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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4. 2020

도시의 탄생

시간을 지나 만들어진 도시 군산

도시는 인간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핵심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도 동일하지만 산업화되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기대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은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계획에 의해 새롭게 신시가지가 만들어지고 오래된 구시가지는 재생을 통해 다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예전보다 훨씬 복잡한 곳으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것이 도시의 생태계다. 

대기업들이 있었던 군산이었지만 차츰 산업의 변화 등으로 인해 도시의 활기가 많이 사라졌다. 근대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군산은 이제 관광으로 산업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물건들도 옛날에는 무척 요긴하게 사용되던 것이었다. 어느 학교에 서 있었을 학생의 모습이나 어이가 없는 맷돌도 보인다. 마치 시간을 관통하듯이 모든 물건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적지 않다. 이 선로는 망해가던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1944년에 신문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준공했던 경암선이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북선제지 철도', 70년대 초까지는 '고려제지 철도', 그 이후에는 '세대제지' 혹은 '세풍 철도'로 불리다 세풍그룹이 부도나면서 새로 인수한 업체 이름을 따서 '페이퍼 코리아선' 혹은 경암선'으로 불렸다고 한다.  

전북 군산은 일제 식민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다. 관공서, 주택, 사찰, 쌀 창고 등 일제강점기 건물과 개항(1899년) 이후 설계된 바둑판 모양의 격자형 도로망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학창 시절을 연상하면서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곳이 구석구석에 있다.  

구 군산역에서 조촌동에 위치한 길이가 2.5km밖에 안 되는 짧은 철길이지만, 크고 작은 건널목이 열 개가 넘었고, 교량도 경암동과 구암동에 하나씩 있었다. 그 후에 지어진 아파트의 사이로 나있는 철길이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  

군산 하면 생각나는 작품은 단언컨대 탁류라는 소설이다.  지금 탁류 속의 캐릭터는 마치 살아 있는 인물들처럼 군산의 곳곳에 있다.  극단적인 거부행위를 통해서만 자기를 지킬 수 있었던 주인공의 비극적 생애를 그리고 있는 탁류의 주인공은 일방적 수난을 거듭하던 끝에 주체적인 존재로 변모하고, 마침내 수난의 근원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인 초봉은 청순한 처녀로서 군산 미두장 주변에서 기생하고 있는 정주사의 딸로 남승재라는 인물이 자신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강요에 따라 타락한 은행원인 고태수에게 시집가게 된다. 여자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그냥 마음만이 아니라 강인함도 필요한 것은 지금도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평생 어린 시절로부터 삶의 활력과 재생의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아이는 재생의 동력이다. 글의 원천을 가진 에너지원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먹고 생겨난다고 한다.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 없고, 뜻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나오는 말과 글이 바로 진실된 말이고 참된 글이라고 한다. 채만식의 탁류를 생각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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