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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0. 2020

인식의 틀

기호 학맥을 계승한 학성강당

정치를 하는 사람이 지식의 근본이 없다면 민의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예로부터 성리학을 이어온 사람들은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등으로 불리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나갔다. 군자는 표면적인 지식을 수집할 수 없지만 인식의 틀은 쇄신할 수 없으며 소인은 인식의 틀은 쇄신할 수  없지만 표면적인 지식은 수집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군자는 모든 일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강구하고, 소인은 모든 일을 남의 이목을 위하여 강구한다는 의미다. 

김제에 가면 전통서당으로 전통 학문과 상읍례(相揖禮) 의식의 맥을 제대로 이어 오는 유일한 곳으로 국내 최대의 서당인 학성강당이 있다. 학성강당(學聖講堂)은 기호학맥을 정통으로 계승한 전통 서당으로 성인을 배운다는 뜻을 담아 학성(學聖)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기호학파의 연원은 이이에서 비롯되었으나, 주로 서인 중심이었다. 

학성강당이 전통으로 계승하였다는 기호학맥의 기호지방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황해도와 충청도 일원으로서, 동쪽은 관동지방, 남쪽은 호남지방, 북쪽은 관서지방과 접경을 이룬다. 이황의 호발설을 이이가 비판한 이후, 영남학파의 이현일(李玄逸) 등이 그 호발설을 옹호하기 위해 이이의 학설을 따르는 기호학파를 주기파 또는 기학파(氣學派)라 부르기도 하였다.

학성강당은 1954년부터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쳐 온 김수연(金洙連)이 건립하였다. 1959년 당시의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으로 이전하였다가 1961년 다시 김제군 성덕면 소석마을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강학이 이루어지는 학성당(學聖堂)의 좌측에는 누각 형태의 함덕정(涵德亭)이 바로 붙어 있어 열린 공간에서 서로의 학문을 독려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학생들이 숙식 생활을 하고 있는 명인정사(明仁精舍)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학성강당에서는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부터 계몽 편, 소학(小學)·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 및 시경(詩經)에 이르기까지 강학하며  일반인들에게 선조들의 고급 선비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우수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고 한다.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남을 알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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