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폐왕성지(廢王城址)를 찾아서.
전국에 남아 있는 성들을 보면 크게 산성과 읍성으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읍성은 지금의 도시와 유사하게 당시 편의시설과 도시를 이루는 각요소들이 들어가 있지만 산성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오로지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산성은 편리함이나 삶을 이어가는 곳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특히 건물이 대부분 사라진 산성은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나오는 공간보다도 척박해보인다.
거제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폐왕성(廢王城)으로 불리는 둔덕기성은 거제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성곽이다. 그 오래된 시간만큼이나 터만 남아 있지만 고려시대 의종(毅宗: 재위 1127∼1173)이 정중부의 난으로 폐위된 뒤 이곳에 머물렀던 곳이기에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다시 둔덕기성을 걸어서 올라가본다. 산성에 올라가면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산다면 어떨까라는 것이다. 거제지역의 고대문화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며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거제의 대표적인 역사적인 공간이다.
굳이 이곳에서 살려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면 풍광으로만 보면 참 괜찮은 곳이다. 둔덕기성은 둔덕면과 사등면의 경계지역에 있는 우봉산의 지봉(해발 326m)에 있는데 거제도 내에서는 교통상 주요 거점지이자 조망이 매우 양호한 지역이기에 거제를 조망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올라가봐도 좋다.
당시에 사용했을 거제 둔덕기성 집수지에는 지금도 물이 적지 않게 고여있다. 정수된 수돗물조차 의심스러워서 생수를 먹는 시대에 저 물을 식수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본다. 저 물을 마셔도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 상수도가 발달되지 않았던 때에 그나마 정수된 물은 지하수를 퍼올린 우물이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구석구석에는 구축될 당시의 흔적들이 남겨져서 접해볼 수 있다. 중요한 유적이지만 발굴은 생각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2004년 동쪽 체성과 동문지, 2007년 집수지에 대한 시굴·발굴조사가 실시되면서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무신시대를 연 무인란의 이후 고려의 의종은 왕위에서 물러나 거제현(巨濟縣)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곳에서 삶을 이어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편안하게 삶을 마쳤으면 좋으련만 3년뒤에 1173년(명종 3) 김보당(金甫當)이 무인정권에 대항해 거병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의종을 계림(鷄林:지금의 경주)에 거처하게 되었다가 실패하자 이의민에게 살해되어 곤원사(坤元寺)의 북쪽 연못에 던져졌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살았다는 확실한 이야기는 고려의 제18대왕 의종일 것이다. 그냥 터벅터벅 돌아보며 주변의 풍광도 접해보고 허물어진 성벽과 집수터, 아무렇게나 놓여 있지만 중요했을 기초석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