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이 머물렀던 김제 귀신사
김제의 금산면 모악산(母岳山)에 자리한 귀신사의 귀신은 몸이 돌아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치원이 이곳에서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을 편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사찰 귀신사는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904년(효공왕 8)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당나라 고승 법장(法藏)의 전기로 정식이름은 당대천복사고사주번경대덕법장화상전(唐大薦福寺故寺主飜經大德法藏和尙傳)이다.
귀신사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2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명부전·산신각·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몸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사람은 위안이 된다. 국신사를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정복지를 교화하고 회유하기 위해 각 지방의 중심에 세웠던 화엄십찰이라는 일부 연구도 있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대중화시킨 관음, 미륵, 미타, 정토 사상이 있기에 최치원이 저술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직접 가서 귀신사의 입지와 지형을 보면, 능선을 피하여 옆구리에 대웅보전을 지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불을 모시는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 같은 전각은 산의 능선을 따라서 짓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사찰의 배치마다 건물이 자리한 곳의 의미가 있다. 보통 대웅전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칠성각이나 삼성각 같은 건물은 위쪽에 자리한 것이 일반적이다. 백제가 있을 때 만들어졌던 사찰의 대부분의 폐사지가 된 것을 보면 풍수지리적 요소도 간과할 수 없다. 김제는 백제의 곡창지대였으므로 신라가 백제를 통합하였을 때 백제의 사찰에 승려를 파견하는 것은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귀신사 삼층석탑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인 귀신사 부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4호인 귀신사 석수(石獸)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높이 4.5m의 화강암재 석탑으로,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옥개석의 곡선이 거의 평행을 이루면서도 신라시대의 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빼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국사 원명(圓明)이 중창한 국신사(國信寺)는 중창하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귀신사는 당시에는 건물과 암자가 즐비했던 대찰이었이었지만 임진왜란의 전화로 폐허가 된 것을 1873년(고종 10)에 춘봉(春峯)이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