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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1. 2020

배바위 (舫巖)

읍내동의 배를 타던 나루터

신탄진과 읍내동을 연결하는 천변고속화도로의 아래쪽에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어서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철상과 자동차 중고부품, 공업사 등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강을 건너는 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일명 배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갑천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배를 묶어두었던 것이다. 동춘당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도 이곳에서 배를 탔던 기록이 남아 있다. 

대전 대덕구에서도 안쪽으로 들어와 있으며 읍내동에서도 자주 찾는 곳이지만 최근 도로가 개설되고 있었다. 앞쪽으로 다가가면 자연석에 암각을 해놓은 현감한공성보몰세불망비가 남아 있다. 일명 배바위인데 비석으로 세워지는 일반적인 불망비와 달리 바위에 직접 각자하였다. 조선 현종 때 회덕현감을 지낸 한성보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1670년에 새겼다고 한다. 

이은정 한성보는 사계 김장생의 외증손으로 김장생의 아들인 신독재 김집과 우암 송시열에게 학문을 배웠다. 회덕현의 수령이 되어 근무한 것이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의 치세가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성보는 1689년 장희빈이 낳은 아들(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이 시기상조라 하여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미움을 사 결국 사사당하는데 이때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 묻혀 독서로 소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실제 배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갑천이 흐르고 있다. 둔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대청호로 가는 길목이 나온다. 

대전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거의 매일 보는 갑천의 옛 이름은 영원하다는 이름의 만년의 만년강(萬年江)이었다. 회덕이 공주목 관할이었을 때 살기 좋은 곳으로 충청도 공주 계촌(溪村)이 택리지에 등장한다. 계촌이 바로 갑천을 의미한다. 벌곡면의 대둔산 국립공원에서 발원하여 평탄지형인 대전을 휘감아 유등천, 대전천을 아우르고 신탄진 신대들에서 금강 본류를 맞이하여 그 맡은 일을 다 하고 갑천 이란 이름은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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