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경주 김 씨 고택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 씨로 김 씨가 본격적으로 지역마다 자리한 것은 통일신라 마지막으로 올라간다. 견훤이 올린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世)로 하고 14세 문선공(文宣公) 김요(金瑤)의 현손 6형제를 각각 파조(派祖)로 하는데, 영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경주 김 씨는 셋째 김을진(金乙軫)의 장령공파(掌令公派)와 다섯째 김을초(金乙軺)의 규정공파(糾正公派)가 주류를 이룬다. 보통 경주김씨가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한옥 스테이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잠시 스테이가 중단되고 있다. 서산 경주 김 씨 고택은 건립 당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건축양식으로 미루어볼 때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하고 있는 고택이다.
경주 지역 시림(始林)(계림(鷄林))의 금 궤짝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신라 탈해왕이 성을 김(金)이라 지어 준 김알지(金閼智)가 경주 김 씨(慶州金氏)의 시조이다.
대문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一자형의 행랑채 뒤편에 동향한 ㅁ자형의 안채와 남향한 一자형의 사랑채가 {{#180}}형을 취하고 있는데 평야(平野) 마을에 위치하여 북동향(北東向)하고 있다.
행랑채의 좌측단에 1칸 바깥 대문이 따로 설치되어 있으며, 안채의 뒤뜰에 3칸 초당(草堂: 공부방)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고양이가 많이 눈에 뜨이는데 사람이 없으니 고양이의 집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 고택에서 만난 고양이만 네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이 집의 안채는 중문간을 들어서 안마당의 우측에 동향(東向)으로 몸채가 배치되어 있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정원이 보인다. 안채의 부속채는 부엌 앞으로 2칸 광을 두고, 건넌방 앞으로 작은 부엌·아랫방·중문 간·사랑 부엌을 내달았다. 사람이 없으니 대들보에 달려 있는 징도 한 번 쳐본다.
고택 안에 걸려 있는 그림이 마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연상시키게 한다.
마당에는 적지 않은 맷돌들이 보이는데 오래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 정원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사랑채는 여느 주택과는 달리 안채보다 간소한 구조로 한 반면에, 사랑채에 달린 차양 지붕구조가 잘 드러나게 하였다.
내린 비로 인해 마당의 돌 안에는 물이 고여 있다. 인간 개개인의 삶이나 인간 사회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사상 속에 그 시작이 있다고 한다. 보이는 것처럼 맑은 물처럼 깨끗한 가운데 사상이 시작이 되면 좋다.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라 부르는 평지 마을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동향한 전통 목조 한와가로 건축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고택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김기현 가옥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서산 경주 김 씨 고택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