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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4. 2020

남강거사(南岡居士)

이때가 바로 죽을 때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사회지도층 인사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완용을 비롯한 대신들이 매국(賣國)에 앞장선 결과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적지 않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반발과 비협조가 이어졌다. 이에 일본은  작위(爵位)와 은사금(恩賜金)으로 이들을 회유하였다. 돈 싫어한다는 사람이 어디 있고 명예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한 이 방법으로  일제는 76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을 귀족으로 임명하고 수만 엔에서 수십만 엔에 이르는 은사금을 수여하며 끌어들였다. 


김제에 가면  남강거사(南岡居士)를 자처하면서 머물렀던 남강정사가 있다. 이곳은 일본이 돈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회유했던 장태수가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난 곳이다. 개와 말까지도 능히 주인의 은덕을 생각하는데, 역적 신하들은 어찌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팔 수가 있는가(犬馬猶能懷主德 賊臣何忍賣君欺)라며 이곳에서 은거하며 살았다. 장태수는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이 되어 고종을 측근에서 모셨던 사람이니 일제는 회유의 대상으로 제격이었다. 

마을의 안쪽에 자리한 남강정사의 저녁시간은 조용하기만 했다.  매국(賣國)의 상급(賞給)으로 부와 권력을 이어간 부역자들의 반대편에는 망국의 치욕을 목숨을 끊어 항거한 자정(自靖) 순국 지사들이 있었다. 이렇게 소박한 집 하나만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남강정사에는 집 한채와 전북 김제의 남강정사 집 안에 세운 일유재 장태수 선생사적비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일유재가 순국한 뒤 3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조국은 광복되었는데 일유재 장태수 선생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한 것은 1962년이다.

공간은 한적하지만 여유가 있어서 좋다. 사람의 인기척은 거의 안 보이는데 집을 지키는 개의 소리만 들려온다. 금산면 원평집강소, 수류성당, 금산교회, 귀신사, 금구면 남강정사 등은 김제의 동부권역에 속한 곳이다. 

모악산 마실길 코스의 1코스(21.3㎞)는 유각재(전주 경계)-귀신사-싸리제-신아대숲길-서강사-남강정사-서릿골-금평저수지-금산사-배제(완주 경계)로 이어진다. 대부분 역사와 관련된 볼거리들이 연계된 마실길코스다. 동양 最大 最古 수리시설 벽골제에서 펼쳐지는 김제지평선축제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지난 21년을 잠시 뒤로하고 2020년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상에서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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