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솔뫼성지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자리

솔뫼성지 : 충청남도청이 이전한 내포는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땅이라고 알려져 있다. 도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솔뫼성지는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사제로 알려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에 출생하였으며 증조부와 부친, 김대건 신부까지 4대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26세가 되던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솔뫼성지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조선의 정치와 사상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수 : 아침 일찍부터 성지를 보러 가는 거야?

성현 : 나는 종교가 있지는 않지만 성지는 종교와 상관없이 가볼 수 있는 여행지라고 생각하고 있어. 조선말에 백성들의 의식변화와 소외된 양반계층과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과의 정치적인 대립의 중심에 천주교가 있었거든.

주만 : 천주교랑 정치적인 대립이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러는 거야?

소윤 : 그냥 종교박해가 아니었던 가요?

수진 : 그럼 너희들은 천주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진수 : 솔직히 어머니는 천주교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나는 천주교도 괜찮은 종교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야.

수진 : 그럼 바꾸어 물어볼 게. 조선시대의 종교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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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 태조 이성계가 숭유억불정책을 펼쳤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었고 미신이나 서낭당 등 다양한 믿음의 대상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는데.

성현 : 조선의 성리학은 학문이지만 조선 후기로 오면서 종교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어. 종교는 아니지만 부모를 섬기고 조상을 모시고 위로는 임금을 받드는 근간이 돼버린 거야. 그런데 초기의 천주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금해온 것이 탄압의 빌미가 된 거야.

수진 : 양반들 중에 일찍 천주교를 받아들인 남인들은 천주교를 종교가 아닌 서양의 학문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는데 이때 노론은 유학을 유교로 성리학을 유일사상으로 생각했었어. 자신들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공격하기에 아주 좋은 빌미가 된 거지.

진수 : 충청남도가 유달리 박해를 받았던 성지가 많은 거 같긴 해.

소윤 : 중국에서 가까우니까 그랬던 거 아니에요? 서해를 건너오면 바로 충청남도니까요.

수진 : 맞아 소윤이 말대로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그런지 천주교가 이 땅에 자리 잡을 때 박해를 말하자면 충남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성지들이 충남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은 한국의 첫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가 있는 솔뫼성지로 공원처럼 잘 조성되어 있어 여행지로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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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 솔뫼성지의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 나도 김대건 신부는 들어본 적이 있어.

소윤 : 그런데요. 성리학이나 유학은 어디까지나 학문에 국한되어야 되지 않나요? 신앙심을 가져야야 할 대상이 없잖아요. 불교는 석가모니, 이슬람은 무함마드, 천주교는 하느님과 마리아, 기독교는 예수라는 대상이 있는데 말이죠.

성현 : 소윤이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노론에게는 성리학 자체가 삶의 철학이라는 것으로 접근하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야 예를 들어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그리스 철학을 기반으로 철학적인 논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어. 즉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사상은 그들이 말하는 유교의 충효와 상충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던 거야.

주만 :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의 마음의 안식을 주는 종교를 무조건 탄압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가 없는 거잖아.

진수 : 조선이 그 생명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도 젊은 사람들이 유학 자체를 배울 필요가 전혀 없는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거잖아.

수진 : 그건 유학이나 성리학 자체의 문제가 아니야. 차라리 당파싸움이 심했던 시기가 훨씬 나은 때라고 생각할 수 있어.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는 건데. 정조 사후에 노론만의 일당독재가 심해지던 시기로 성리학 외에 모든 사상은 사문난적으로 치부해버렸어. 정조가 살아 있을 때는 남인을 노론의 견제수단으로 중용한 적이 있지만 순조가 즉위한 이후에는 완전히 숙청작업이 극에 달해서 거의 100년 가까이 피의 역사가 이어진 거지.

소윤 : 양반들 간의 기득권 다툼에 애꿎은 백성들만 희생양이 된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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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 : 을사 추 조사건(1785)을 시작으로 천주교 박해 100년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어.

진수 : 박해가 없었다면 오히려 천주교가 그렇게 빨리 퍼져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 원래 사람이란 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당시 백성들의 삶은 궁핍했으니 어디에서라도 희망을 찾으려 했을 테니까.

수진 : 정조가 현명한 군주였다고 생각하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야. “만약 성리학이 바로 서있다면 일명 사학이라고 부르는 천주교가 그렇게 퍼져나갈 리가 있겠는가? 자연스럽게 사그라질 것이다. “라는 자세를 취한 것이지. 그러나 정조가 승하하자마자 천주교 박해는 본격화된 거지. 그 뒤에 정순왕후가 있었던 거구.

주만 : 그럼 김대건 신부는 그때 순교한 건가?

성현 : 아니야 김대건 신부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어. 최초로 밀입국한 외국인 선교사로 주문모 신부가 6년 동안 선교하다가 정조 사후인 1801년에 신유박해 때 처형을 당했어.

소희 : 솔뫼성지라 함은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고 그런 이름이 붙은 거지? 한국만의 느낌이 있는 성지네.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은 부모님과 같이 가봤는데 정말 성당이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 머 그런 것을 느꼈는데 피의 역사하니까 무언가 다르게 보이더라고. 그런데 김대건 신부는 언제 세상을 떠난 거야?

수진 : 솔뫼성지의 김대건 신부는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라는 솔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가 한국 최초의 한국인 사제가 되었는데 이전에 말했던 강경 황산포에 도착한 이후 선교활동에 전념하다가 새남터에서 국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는데 그때 나이가 불과 26살이었어.

주만 : 우리보다 1살밖에 많지 않은 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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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 그래도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은 했지. 1984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문했고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솔뫼성지에 찾아가 김대건 신부 생가터에 기도를 했으니까.

소윤 : 종교는 다르지만 정치적으로 희생된 그들의 역사 그리고 당시 천주교가 제사를 금지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지네요.

소희 : 천천히 한 번 돌아보자. 산책하기에 괜찮은 곳이네. 성당과 성지는 또 다른 느낌을 부여하는구나.

주만 : 아직 점심시간은 안된 건가? 벌써 배가 고프네.

진수 : 한 바퀴 돌아보고 식사하러 가자.


김대건 : 1821(순조 21)에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1831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 외방 전교회 동양 경리부로 가서 교육을 받는다.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뒤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한 그는 1844년 부제가 되고 다음 해에 주교 페레올의 집 전하에 신품 성사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1846년 서울에서 활발하게 전교 활동을 폈다. 그러나 1846년 5월 서양 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하던 도중 체포된 뒤 문초를 받다가 결국 국문 효수형을 받고 같은 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을 당한다. 체포되기 전까지 김대건 신부의 성직자 활동은 1년 여에 불과했지만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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