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물 같은 존재

신라불교 초전지의 아도화상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소금이다. 소금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살아가는데 중요한 결정체이다. 꼭 소금과 같은 결정체가 아니더라도 소금과 같이 꼭 필요한 것들은 얼마든지 비유할 수 있다. 삶의 목표나 어떤 존재, 정신, 혹은 돈이 될 수도 있다. 소금은 과하게 섭취하면 인체에 큰 문제를 만들게 된다. 돈에 집착하게 되면 달달한 소금물을 계속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은 없어지지 않고 결국 텅 빈 자신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불균형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교와 같은 종교는 인생의 균형점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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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의 한 지역으로 고요한 곳이지만 선산이라는 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중요한 요충지이며 구미시가 산업도시로 발돋움을 하기 전에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파가 된 곳이 이곳이 된 것은 지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로 통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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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초기에는 강성한 백제보다 약했기 때문에 고구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광태토대왕의 도움뿐만이 아니라 실성왕, 눌지왕 즉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고구려로부터 불교를 가지고 들어온 아도화상이 신라에 도착한 것이 바로 선산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청동기시대에서 이어져온 토착신앙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불교가 자리를 잡는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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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불교 초전지에는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흔적과 더불어 어떻게 신라에 불교가 전파되었는지 알 수 있는 전시관이 조성이 되었다. 선산지역의 여러 지명은 아도화상과 연결이 되어 있다. 도개면 도개리에는 느티나무인 괴목이 있는데 괴목은 모례가 손수 심었으며 모례의 집에 아도가 머물면서 가축을 길러 소골이라고 불렸던 지명이나 우실과 쇠골 역시 모례장자가 외양간을 지었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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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본격적으로 불교가 자리잡게 된데에는 이차돈이 있었다. 영흥사터에 복원한 경주 흥륜사 금당에는 이차돈을 포함한 신라 십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데 법흥왕은 왕위에 오른 뒤 늘 불법을 일으켜 고대국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그 의지를 실제 실행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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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의 순교를 통한 법흥왕의 불교 공인은 이러한 개혁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고구려의 불교초전지는 가보지는 못했으나 백제의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래하였다는 법성포를 비롯하여 이곳 구미 선산의 초전지는 방문해보았다. 불교는 하나의 종교라기보다는 국가를 하나로 결집하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역할을 하였다. 백제의 마지막 고도 부여에서 사찰의 건립을 계속해서 주도했던 것은 국가의 존속을 바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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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로 와서 처음 불교를 전파한 아도화상은 색다른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두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은 5세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고, 현창화상(玄彰和尙)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한 후 신라로와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라 하여 꺼려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에 일선현(一善縣)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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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는 마을이 조성이 되어 있으나 코로나 19에 다들 조심스럽게 야외에서 풍광만 만나보고 있었다. 그를 해하려고 했을 때 아도화상이 이곳에 자리했을 모례의 집에서 스스로의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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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분위기는 좋다.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가끔 화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날이었다. 가본 적이 있는 김천시의 직지사는 418년(눌지왕 2) 아도화상이 선산의 도리사(桃李寺)를 개창할 때 함께 지은 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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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미래를 알고 싶어 하지만 미래는 이미 그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가 어떤지 보면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현재 노력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미래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고 현재에 이득을 내는 기업이 미래에도 이득을 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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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아도화상이 살았던 그 시대로 돌아가 본다. 어떤 것을 믿고 이곳까지 내려와서 살았을까. 지금처럼 국경이 명확하지 않았을 시기에 고구려와 신라, 백제는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소금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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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마을의 중심에는 아도화상의 상이 세워져 있다. 아도화상의 화상은 역생(力生)으로도 번역되는데, 스승의 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upādhyāya'(팔리어 upajjhāya)의 속어 형태를 음사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화상은 제자에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책을 읽히고 가르치기 때문에 친교(親敎)라고도 하며 나쁜 소견을 내면 가르쳐 버리게 하고 착한 소견에 머무르게 하는 등 의무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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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의 sal에서 유래되어 salt(영어), salz(독어), sel(프랑스)의 소금은 꼭 필요한 존재다. 소금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치우치지 않은 삶과 미래를 보여주는 그리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귀중한 존재다. 사람은 아도화상이 살기 위해 마셔야 했던 모례 가정의 물처럼 소금 같은 존재를 평생 찾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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