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를 쏘아 정보를 알려주었던 옛 흔적
오포대라고 하면 다소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일제강점기에 시간이나 비상소집용 혹은 정보를 알리기 위해 포탄 없이 화약만 충전하여 소리만 내던 화포였다. 시계가 귀한 시절 오시(오전 12시~오후 1시)에 포를 쏘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오포대이기도 하다. 물론 조선 세종대에 장영실이 자격루를 개발하여 시간을 알리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궁궐 가까운 곳에 살아야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오포대의 형태는 옥천 오포대가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원래 옥천군 금구리 57-9번지 임야 내 설치된 것을 금구 어린이공원 조성에 맞춰 현 위치로 옮겨서 보존을 하고 있다. 어린이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마치 철탑처럼 보이는 오포대의 용도가 궁금할 수도 있다.
오포대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고 의용소방대의 전신인 경방단의 비상소집용으로도 사용되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이 보근에서 정오에 사이렌을 울렸고 민방위 훈련 때에도 사이렌을 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시계탑만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금구 어린이공원은 조성된 지 얼마 안 되는 곳이지만 옥천읍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산책로와 함께 운동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오포대가 많지 않은데 옥천에서 오포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포대는 일제강점기에 많이 활용이 되었지만 조선 중기부터 포를 쏘아 정오를 알리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옥천경찰서 옆 낮은 언덕 위(옥천읍 금구리 57-22번지 일원, 1만 5693㎡)에 조성된 이 공원에는 잔디광장, 휴게시설, 어린이 놀이시설, 산책로 등이 갖춰져 있다.
옥천의 오포대 같은 최초의 오포는 조선식(朝鮮式) 선입포(화약과 포탄을 앞에서 넣고 심지를 꽂은 다음 불을 붙여 발사하는 식)로 경기도 광주로부터 이송해다가 측후소 바로 위 각국 거류 지계 표석 근처에서 제일성(第一聲)을 울렸다고 한다.
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한 때에 우리에게 시계를 작게 만드는 기술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손목에 시계 하나 얹어 있는 사람들은 여유가 꽤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귀한 시계를 손목에 얹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했는데 그것도 쉽게 잊혔다.
금구 어린이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면서 변해가는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고 이렇게 공원에서 산책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시계의 역할이 크다. 손목에 찰 만큼 작은 시계가 대량으로 제작된 것은 20세기 초반의 일이었는데 루이 까르띠에(Louis Cartier)가 항공산업의 선구자인 알베르토 산투스 두몬트(Alberto Santos-Dumont)를 위해 고안한 산투스가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저 규모가 작지 않은 철탑에서 쏘아 올린 포로 시간이나 어떤 신호를 알 수 있었던 시기가 불과 100여 년도 안되었다. 정오를 알려주기에 오포대라고 불렸던 우리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