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이중인격(adp) - 04

인생 이야기

난 현지가 느꼈을 그런 감정 같은 것은 겪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미묘하게 그 감정선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고 감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감정의 경계선에서 과감히 포기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여자를 못 만나본 나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핑계가 나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었겠지만 글쎄.. 자신의 지랄 맞은 그 성격 때문이 아닌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철학원에서 돈을 쓴 것 가지고 또 난리다. 10만 원을 찾았지만 내 나름대로 쓸 곳이 있어서 쓰고 카드를 긁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돈은 벌면 그만 아닌가. 돈은 쓰라고 있는 거지 은행이나 창고에 쟁여두고 있으라고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국내 유명 남성잡지의 10주년 기념 파티가 힐튼호텔에서 열린다고 나보고 갔다 오라고 티켓을 주었다. 이쁜 모델이나 연예인들도 참석한다고 하니 기대된다. 누가 올까?


"뭘로 드릴까요?"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자가 말을 건다. 뭘 준다는 거지. 티켓을 보여주고 들어오긴 했는데 갑자기 여자가 말을 거니까 당황스럽다. "저.. 뭐를 준다는 건가요?"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흩어보더니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말한다.

"칵테일로 드릴까요? 언더락으로 드릴까요?"
"공짜인가요?"

"예 취하셔서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요."

"아 그럼 어떤 칵테일이 있어요?"

"듀어스 베이스의 하이볼 하고요. 사이다와 산토리를 섞은 파나셰, 진 베이스의 마티니, 버번 소다가 있고요. 위스키는 메이커스 마크, 일라이저 크레이그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여자 이걸 다 외워서 말하는 건가? 모르겠다. 마티니는 들어본 것 같으니까 그거나 주문해야 되겠다.

"마티니 주세요."

"예 마티니요. 바로 드릴게요. 부토니에르 이쁘네요."

"예 부토..부토니요?"

"아~ 슈트 왼쪽에 꽂은 꽃이요." 나는 슬쩍 왼쪽을 쳐다보았다. "아 이건 현지가.. 아니에요."

이걸 부토니에르라고 부르나 보다. 그냥 현지가 어딜 갈 때 꽃이라고 준 건데 의미가 있는 건가... 여자가 금방 가져온 마티니가 들어가 있는 이뻐 보이는 잔을 들고 뒤로 돌아섰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여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연예인 같기는 한데 너무 이쁘다. 헐렁해 보이는 화이트 셔츠에 착 달라붙은 청바지가 너무 잘 어울린다. 여자의 품격이 있다면 저 여자는 특급일 것이다. 지들끼리 서로 아는지 서로 인사를 하고 악수도 하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도 끼고 싶긴 하지만 여기서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괜히 주눅이 든다. 맛있는 것 먹고 이쁜 여자 연예인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오긴 한 건데 괜히 왔나?


진행자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남자는 마이크를 톡톡 치더니 이어 말을 내뱉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Men's Q 10주년 파티에 참석해주신 분들께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행사는 7시부터 시작해서 11시까지 진행되고요. 천천히 식사도 즐기시고 적당한 음주도 하시기 바랍니다." 남자는 옆에 여자가 들고 있던 쟁반에서 무언가를 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오늘 파티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 바카라와 블랙잭을 준비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직접 돈을 내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당 1만 원짜리 칩 50개를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1등에게는 스페인 왕복 항공권을 드리고 남은 칩의 금액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이 됩니다. 자 이쪽으로 와서 칩을 받아가세요. 말을 길게 하면 피곤하실 테니 지금부터 즐기세요."


블랙잭은 알겠는데 바카라는 뭐지? 저 남자가 하는 말은 칩을 따도 현금으로 바꾸어주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1등만 스페인 왕복 항공권을 준다는 말인데 승자독식이잖아. 아무튼 나도 받아야겠다. 한 사람당 침이 50개가 가지런히 꽂혀 있는 통이 지급되었다. 뒤를 보니 바카라 테이블 두개와 블랙잭 테이블 두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블랙잭보다 바카라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바카라 테이블의 귀퉁이에 앉았다. 왼쪽에는 아까 본 그 여자 연예인이 앉고 오른쪽에는 모델처럼 보이는 남자가 앉았다. 바카라 테이블 안쪽에는 여자 직원이 카드를 앞쪽에 두장 자신에게 두장씩 나누었다. 왜 두 장이지? 더 이상 주지도 않는다. 옆을 쳐다보니 받은 카드를 들고 무언가를 계산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 직원을 멀뚱멀뚱 쳐다보자 여자는 알았다는 듯이 나에게 말을 해준다.


"바카라를 처음 해보시나 봐요. 바카라는 님 같은 플레이어와 저 같은 뱅커가 카드를 두 장씩 가지는데요. 두 장의 숫자를 더해서 끝짜리가 큰 쪽이 이기는 게임이에요. 즉 두 장의 카드를 더 한 수의 끝자리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거죠. 플레이어에게 돈을 걸면 1배를 받고요. 뱅커에게 걸면 0.95배, 비기는 쪽에 걸면 10배를 돌려받습니다."

"아~ 예." 뭔가 간단한 거 같은데 복잡하다.


30분이 지났을까. 내가 가진 칩은 모두 없어졌다. 내가 거는 곳마다 졌다. 이렇게 잘 지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이쁘게 생긴 여자 연예인은 타짜인가? 그녀 앞에 쌓인 칩만 벌써 150만 원은 되어 보였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난 재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공짜술이나 많이 마셔야 되겠다. 아까 말한 칵테일을 모두 마시면 그래도 오늘 하루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나마 아는 블랙잭을 할 걸 후회된다.


※ 부토니에르 : 남자의 슈트나 턱시도 좌측 상단에 꽂는 꽃으로 결혼식, 무도회, 파티 등과 같은 행사에 꽂는 것이 일반적이다. 진짜 꽃도 있지만 라드디니 같은 디자이너는 장식용 꽃을 대중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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