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2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제주도까지 와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 걸리긴 했지만 비행기표까지 예매를 해둔 정성 때문에 움직였다. 서울의 건축회사에 속해서 일하는 이 남자는 이번에는 중국인이 투자한 회사의 빌라 디자인을 하려고 제주도에 한 달간 머물고 있다고 한다. 섭지코지는 몇 번 와본 기억이 있지만 글라스 하우스는 처음 가봤다. 독특한 디자인에 깔끔한 느낌이 나쁘지 않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1층에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라이터인 지포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 있었고 레스토랑은 2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사방이 유리로 만들어져서 있어서 제주도의 자연을 잘 보여주고 있는 레스토랑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는데 익숙한 선율이다. 남자는 나를 보더니 조용하게 일어나서 앞으로 다가왔다. 환하게 웃는 표정에서 선한 느낌이 묻어나왔다.
"현지 씨죠? 반갑습니다. 죄송해요. 제주도까지 와달라고 해서요."
"아니에요. 바람도 쐬고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고 좋은 것 같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현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울에 있는 레스토랑들과는 확실하게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공간 설계가 아주 깔끔하니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더 좋은 것 같았다. 사방이 확 특인 데다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느낌도 들었다.
"여기는 처음이신가요? "
"예 여기는 처음 와본 것 같은데요."
"아 그러시구나.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은 안도 타다오의 작품입니다. 글라스 하우스라고 부르는 곳인데요. 제주도에 세 곳의 작품이 남아 있는데요. 이곳하고 지니어스로 사이, 본태박물관이 있습니다."
"아~ 안도 타다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긴 해요."
"저야 건축가라서 잘 알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잘은 모를 거예요."
"노출 콘크리트를 유행시킨 사람 맞죠?"
"아! 아시는구나."
"그냥 상식 정도 수준에서요."
"여기 오름 세트를 주문했는데 어떠세요?"
"예 전 아무거나 잘 먹어요."
남자는 손을 들어 웨이터에게 손짓을 했다.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와서 물을 따라주었다.
"서울로 가는 비행기표는 5시 10분 비행기인데 괜찮으신가요?"
현지는 잠깐 왼손을 들어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12시가 조금 넘은 상태니까 시간상으로 적당해 보였다.
"예 그 시간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코스로 나오는 식사는 나쁘지 않았다. 남자는 적당한 이야기를 곁들여가면서 대화를 주도했다.
"이 발사믹 향 버섯 탕수 맛은 어떠세요?"
"예 괜찮아요. 발사믹 식초 맛이 딱 적당한 것 같은데요."
"발사믹 식초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그냥 시큼한 식초 그런 종류인가요?"
"아 발사믹 식초는 과일식초예요. 포도를 발효시켜서 만드는 건데요. 제대로 된 발사믹 식초는 5년 이상 숙성해야 되죠. 유럽에서는 고급 요리에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예전에 스페인 갔을 때 비슷한 것을 먹어본 것 같아요."
"발사믹 식초 뿌린 음식들은 여자들이 많이 좋아해요. 새콤달콤해서요."
"제가 의도해서 이걸 주문한 것은 아니에요."
현지는 고개를 숙이고 살짝 웃는다. "설마 그렇겠어요. 발사믹 식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남자들이 대부분인데요."
"참 이 레스토랑에서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도 찍었어요. 윤지후가 금잔디에게 차를 대접하던 곳이 여기였거든요."
"그래요? 전 그 드라마 안 봐서 잘은 몰라요."
"저도 여기 예약하면서 알아본 거예요. 꽃보다 남자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제대로 본 적은 없거든요."
현지와 남자는 후식까지 먹은 후 레스토랑을 나왔다. 섭지코지는 풍광이 좋은 곳인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올인 촬영지로 더 기억이 남는 곳이다. 어디서 인지는 모르지만 많이 들어본 선율이 들려왔다.
"현지 씨 이 노래 들어보신 적 있어요?"
현지는 노래를 기억하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아 이 노래 스윗박스의 노래잖아요. Everything's gonna be alright이죠?"
"아시는구나. 혹시 아까 레스토랑에서 나왔던 음악하고 연관이 있는 거 아세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지선 상의 아리아 말씀하시는 거죠? 이 노래에서도 나오죠."
"정말 많이 아시네요. 웬만한 남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시간 있으면 책을 많이 보니까요."
"저도 책 좋아하는데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있어요?"
"절반 정도 읽은 것 같은데요. 동물들의 소송이라는 책이요."
"동물들의 소송이요? 요즘은 동물들도 소송을 하나요?"
"한국에 선서는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유럽 같은 경우 학대받는 동물들을 대신해 소송하기도 하거든요."
"그럼 현지 씨는 고기 같은 것을 잘 안 드세요?"
"설마요. 아까도 안심 스테이크 먹었잖아요. 그냥 식량으로 쓰일지라도 죽기 전까지는 존엄성은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요."
"동물들이 무슨 생각이 있을까요. 인간하고는 다르잖아요."
"동물은 동물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동물원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자연환경과는 비교할 수는 없죠. 전 개나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은 없지만 그것이 동물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의구심이 들어요."
"왜요? 동물들을 잘 보살피고 사람들에게도 안정감을 주면 좋은 거잖아요."
"먹을 것을 주고 털을 깎아주고 집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관점이겠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사람이 살기 위해 동물을 식량으로 사용하는 거잖아요. 현지 씨도 지금 점심식사로 먹었고요."
"그건 그렇죠. 우리가 살기 위해서 동물이나 식물을 먹을 수는 있지만 필요 없는 동물의 희생을 줄이던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지와 남자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제주도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5분쯤 지났나 갑작스럽게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현지와 남자는 뛰어서 건물쪽으로 다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