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날

원평장터의 삼일만세운동과 이종희 장군

10월 25일은 국가에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기념하는 독도의 날이다. 독도의 날이 국가기념일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당연한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이기에 국가에서 지정하는 자체가 국제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월 25일이 독도의 날이 된 시작은 바로 1901년 10월 25일에 고종이 공식적으로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인정한 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도라고 하면 일제강점기를 연상케 한다. 강제적으로 병합을 하고 나서 시네마현에 독도를 편입시켰기에 그것을 근거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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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날을 기념하여 김제의 원평장터를 찾아가 보았다. 원평장터는 김제에서 일어난 기미년 독립운동이 일어난 기념의 공간이며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원평장터에서 멀지 않은 곳의 원평 집강소는 동학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민주사회와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그것을 실천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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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운동 기념비가 이곳에 세워져 있는 것은 바로 애향천리 마실길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이종희 장군의 생가터가 복원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제군 금산면 용호리에서 태어난 이종희 장군은 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망명하여 조선의열단 내에서 항일투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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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를 대표하는 항일운동가이며 일본군 육군대장을 저격하려다가 실패하였지만 광복군에서도 지대장으로 큰 활약을 하였다. 조선이 독립한 후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한반도의 땅을 밟지 못했다. 금산면 구미마을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7년에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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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여전히 일제강점기와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의 불씨의 씨앗으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울릉도는 조선시대 오랜 시간 사람이 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라도 사람들 수십 명이 그곳에 이전하여 살고 있었다고 한다. 독도라는 섬 이름은 바로 전라도의 방언으로 '돌'이 '독'으로 불렸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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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선생이 장군으로 불리는 것처럼 안중근 의사도 장군으로 불려야 한다. 그 역시 독립군의 직제 속에 조직을 이루어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한 사람이 아닌 독립을 위해 조직을 이루고 이슈화시켜서 국제사회에서 거론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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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이종희 장군 생가는 현재 역사해설사가 근무하는 사무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1925년 중국 황푸군관학교[黃浦軍官學校]에 김원봉(金元鳳)·김용재(金容宰) 등과 함께 입학하여 제4기생으로 졸업한 이종희 장군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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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장군의 생가의 주변을 걸어보았다. 생가 복원은 잘되어 있었으나 주변 공간은 정비가 필요해 보였다. 2020년은 여러 사건이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의미가 있다. 독도의 날 찾았기에 더욱 일제강점기의 기미독립운동의 의미가 더 있어 보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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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에도 연결이 되어 있는 예향천리 마실길의 가장 큰 장점은 코스 자체가 험준하지 않아 가족과 함께 건강한 자연산림 및 바닷길의 특색 있는 경관 속에서 자연을 음미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색여행이 되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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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천리 마실길은 타 지자체의 경관중심 길과 차별화하여 역사, 문화 및 옛 조상들의 삶이 깃든 옛길을 찾아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청명한 가을을 맞아 많은 걷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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