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수생식물 학습원의 가을
옥천 수생식물 학습원의 가을은 어떨까란 생각을 몇 번 해본 적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이사를 간 어머니의 집을 찾아온 이모와 함께 가까운 곳의 나들이를 생각했을 때 먼저 생각난 곳이 바로 옥천 수생식물 학습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는 하지만 열정 있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열정 있는 삶으로 인해 인생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지만 계절을 느낄 수 있기에 인간은 많은 것을 남겼다.
글로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미첼은 성공과 함께 1937년 퓰리처상까지 수상했지만 다음 작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무엇을 준다 해도 그 일은 다시 시작하지는 못해요."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산으로 잠시 올라갔다 오려고 했던 어머니와 이모는 이곳에 온 것을 참 만족해했었다. 심지어 계절이라던가 풍광이 좋은 곳에 극히 비판적인 동생조차 만족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대청호는 대충 일한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공공의 공간이기도 하면서 가을의 생태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 시간에도 해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이기도 했다.
전망대로 올라가서 유럽의 한 마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감을 얻는 방법은 마음을 비우는 데 있다. 마음속으로 자연과 만물이 흘러들어오게 놔두게 되면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탐구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다." 마를레네 디트리히
역시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보니 멀리까지 한눈에 바라보인다. 구름들이 마치 누가 줄을 세워놓은 것처럼 산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 같다.
이곳 전망대는 약간의 용기(?)와 좋은 풍광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합쳐져야 올라올 수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와 막내이모는 저 아래에서 그냥 바라만 보고 계셨다. 맑아보이는 물위에 아직도 피어 있는 연꽃이 보인다.
때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할 때가 있다. 나무는 나중에 봐도 좋다. 지금은 숲을 보고 있을 때가 필요하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중심축이 있고 그것은 일정한 방향과 주기를 가지고 순환하며 반복하며 존재를 유지해나가는데 지금은 가을이다.
한 바퀴를 돌아보고 다시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위치로 돌아왔다. 저 건너편의 울긋불긋한 산이 토실토실한 밤의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모든 글은 삶에서 나오게 된다. 삶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자신만의 몫이기도 하지만 그 틈새를 비틀어 볼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막내 이모에게 색다른 풍광과 여행의 남다름을 선사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