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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3. 2020

희생 (犧牲)

대덕구의 고흥 류 씨와 은진 송 씨

사람들은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고 요구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희생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 사회도 곳곳에서 누군가의 희생으로 사회가 돌아가고 잇다. 더 나은 삶 안전한 대한민국은 올해 본격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좁혀서 생각해보면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 가족에서 누군가가 희생을 할 때 주로 여성이었으며 어머니였던 경우가 많다. 

희생이라고 하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대전 대덕구에만 오더라도 그 희생을 기린 대표적인 정려각이 두 개가 자리하고 있다. 고흥 류 씨 정려각과 은진 송 씨 정려각이다. 둘 다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해가 갈수록 대덕구의 도시에 자리한 옛 흔적들에 대한 소개와 안내가 잘 만들어져가고 있다. 

대덕구의 정려나 옛날의 고택들은 대부분 송촌동이나 회덕 등에 남아 있는데 골목길에 그 소개가 잘 정리되어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 낮은 야산에 남향으로 세워진 류 씨 부인(1371∼1452)의 정려각은  1996년 3월 27일 대전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삼강과 오륜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풍속 교화를 위하여 효·충·열의 행적이 있는 자에게 사회적 신분의 고하, 귀천, 남녀를 막론하고 세워졌는데 고흥 류 씨 정려각을 먼저 만나본다. 

이처럼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숨겨지고 가려진 희생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혹은 가문을 위해 했던 희생의 가치는 숭고하며 지금도 작은 희생이 모여서 사회를 더욱 살기 좋게 만들어주고 있다. 

각기 견뎌내야 할 부분이 있다. 코로나 19에 사회적 비용이 클 때 그 부담을 같이 부담할 때 2021년은 조금 마음 편하게 만나볼 수 있다. 고흥 류 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잘 보살펴 훌륭히 키워 낸 부인은 조선 효종 4년(1653)에 열녀로서 정려각이 세워졌다.

고흥 류 씨 정려각에서 위쪽으로 올라가 보면 은진 송 씨 정려각이 있다.  은진 송 씨의 지극한 효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영조 때 내린 정려 기를 보호하기 위한 누각이다. 계림군 김정(金程)의 후손인 진사 김광유(金光裕)의 아내이다. 그녀는 회덕현 백달촌 중리에서 태어나 22세 때 결혼했으나 몇 달 만에 남편이 26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 김경여를 훌륭하게 키워냈다고 한다. 

은진송씨 정려각의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기 3평이다. 4면을 홍살을 두르지 않았다. 아들인 경여는 효종 때의 문신으로 나랏일을 많이 한 충신으로 그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덕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적은 비가 세워져 있으며 한자로 음각을 해두었다. 

정려각 중에 홍살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조금은 독특한 정려각이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의 성과 혹은 이루는 것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었다. 송촌동이 은진 송 씨의 집성촌으로 대를 이어서 조정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데에는 이들 여성의 희생이 적지 않은 기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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