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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8. 2020

벼농사

협업의 가치관 벽골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농경사회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과거 수천 년간 농경문화는 한국의 중심 문화중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한 대학의 교수는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원숭이, 사자, 바나나라는 단어를 두고 두 개를 하나로 묶으라는 질문에 벼농사 지역의 문화권과 밀농사 지역의 문화권은 선택이 달랐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문명의 세계관이라고 할까. 질문에 대한 답은 끝에서 보면 된다.

새만금 방조제를 마주 보고 있는 군산, 김제, 부안중 김제시에 자리한 벽골제는 김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행지이면서 고대시대의 오래된 구조물의 흔적이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는 김제 만경평야의 너른 들을 적시던 삼한 시대의 저수지이다. 

이곳을 거리두기를 할 필요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된다. 넓은 곳이어서 사람과 마주 칠일이 많지가 않다. 백제시대에 축조해 유구한 역사를 가졌으며 태조 때 중수를 했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적지 않게 파괴되었다.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일본은 근대화를 명목으로 이 땅에 수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두 가지 의미를 같이 가지고 있는 첨단의 토목기술과 역사성의 벽골제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제방을 가지고 있는데 330년 처음 벽골제가 축조되었을 당시 규모가 1,800보라고 적고 있지만, 이후에 중수하는 과정에서 좀 더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 길이가 상당하다는 제방으로 올라가 본다. 현재 남아 있는 제방의 길이는 3km 정도인데  누수로부터 제방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최하단에 식물 부재를 까는 부엽공법은 오사카의 사야마이케의 제방 축조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좋은 기술을 전수해주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벽골제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답을 한 것이다. 

신라본기 흘해왕 21년조에 ‘시개벽골지안장일천팔백보(始開碧骨池岸長一千八百步)’라고 기록되어 있는 벽골제는 가을에 오는 것이 가장 좋지만 겨울에도 좋은 곳이다. 김제의 대표적 관광지인 벽골제는 김제 지평선축제의 비약적인 성장과 더불어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고 나무를 식재해 왔다.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2021년부터 체계적인 벽골제 관광지 조경식재사업을 통해 김제의 상징성과 벽골제의 역사성·전통성을 살린 계절별, 구간별 수목 및 초화류를 식재해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사계절 힐링공간과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하나로 묶은 사람들은 벼농사 지역의 동양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며 원숭이와 사자를 하나로 묶은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성격을 가진 밀농사 지역의 서양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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