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Dec 19. 2020

순응은 포용이다.

사람은 항상 스스로와 싸운다. 

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변화하는 흐름이 있다. 이 모든 것의 상황은 이미 예측할 수 있는 징조가 있지만 보통은 징조를 무시하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산속에 들어가서 홀로 채소를 재배하고 물을 담아놓고 불을 때고 살아간다면 사회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렇지만 대도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 혼자만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상황의 통제가 가능하지 않다. 

요즘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된 곳을 찾아가고 동양의 경전을 자주 접하려고 한다. 고루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삶의 지혜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말에 일희일비하거나 의미를 담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면 된다. 상대방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도 없지만 굳이 알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김제의 중심에 자리한 김제향교는 도시와 가장 잘 어울리며 문화공원으로서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보통 향교가 있던 곳은 옛날의 중심지여서 도시에서 외곽이나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데 김제향교는 찾아가기가 무척 쉽다. 

주역에서 곤위지 괘상에서는 운명에 앞서면 혼미하고 순응하면 얻는다고 한다. 순응하는 것은 변화를 포용하면서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김제향교는 조선 태종 4년(1404)에 세웠고 정유재란(1597)으로 불탄 것을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었는데 그 뒤에도 몇 차례의 수리가 있었다.

옛날의 과거시험은 지금 대학시험의 논술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지금의 고시와도 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나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를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들에게 임금이 제시하였다. 향교 같은 곳에서 열심히 공부한 유생들은 여러 서책에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을 기술했다. 소과 합격자는 ‘생원’또는 ‘진사’라고 불렸고, 대과에 붙어야 비로소 관리가 될 수 있었다. 

김제향교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앞면에 사당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앞과 옆이 트인 퇴칸을 두었고 몸채 쪽에는 문을 달았다. 양 끝 칸에는 1짝씩 문을 달고 그 옆 공간에도 골 판벽을 끼워 특이한 앞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날 사람들은 관리로 나아가기 위한 과거시험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평생을 공부하면서 살았다. 문과 과거 급제자의 평균 나이는 36.4세였으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과거를 보기도 했다. 사람은 평생을 스스로와 싸우면서 산다. 일상과 타협을 하고 순응하면 결국 변화에서 뒤처지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의 틈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