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날의 옥천 경율당
2020년에만 평생을 재볼 수 있는 체온을 모두 재본 것 같은 느낌이다. 올해 역시 체온을 주구장창 잴 수 있는 기회가 많겠지만 코로나 19나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면 사람의 체온을 대동소이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교육의 온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교육의 방식은 생각보다 많이 바뀌어갔으며 교육의 기회도 차이가 많이 나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교육의 온도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약간 무겁다.
눈 내린 날 작년에 한 번 찾아가 본 옥천의 경율당을 찾아가 보았다. 율곡 이이를 존경하여 자신의 호를 경율이라고 짓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던 이곳에서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뜻한 옛 선현의 말을 찾기 위함이다.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어떤 때는 위로가 필요하다. 경율당은 용마루에 얹은 장식기와에 ‘옹정30년을유’라는 글귀가 있어 문인 전후회가 1735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이기적인 욕심에 대해 말하면 기운이 빠지고 산림에 대해 말하면 정신이 맑아지며, 문장에 대해 말하면 마음이 즐겁고, 학문에 대해 말하면 뜻이 가지런해진다고 한다. 여기서의 학문은 문제를 풀기 위한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좋은 문장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즐거워한다. 경율당의 건물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사방으로 툇간을 달았고, 뒷면 창고방에는 서책을 보관하던 누락이 설치되어 있다.
경율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목재로 된 물건들은 따뜻해서 좋다. 어떤 이에게 하는 교육은 생각하는 마음에서 전해져야 따뜻해진다. 솔직히 학원에서 하는 교육은 따뜻한 것이 아니라 차가운 교육이다.
경율당은 전 씨 문중에서 관리를 해오고 있는데 이 서당은 유생들이 앉아서 글을 읽고 시를 지을 뿐 아니라 후손들의 학문 연수와 인격수양의 도장으로 이용되면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으며 해방되고 나서 까지 이곳에서 글을 가르쳤다 한다.
안남에 집성촌을 이루었던 용궁 전씨는 안남 면에 처음 정착하게 된 때는 임진왜란 전으로 조선 선조 때인데 16대 조가 안남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문득 별주부전에서 토끼가 자라를 따라 들어간 바닷속 용궁과 용궁 전씨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