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구곡(人生九曲)

한강 정구의 사양서당 강당

사람이 찾아야 될 지적인 길이 멀고 멀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에게의 중요함은 물질적인 것에 대부분 몰려 있었다. 사람의 인생은 저마다 갈 길이 다르고 큰 굽이가 아홉 개나 될 정도라고 하지만 왜 하나만 추구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다. 현재의 지식인들은 과거의 지식인들과 수신제가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념과 성향, 가려는 길이 다를 수는 있지만 옛사람들은 자신의 학문을 하나에 머물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한 기술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철학을 위한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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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면서 부모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들을 찾아 지금도 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가는 길에서 책에서 혹은 역사적인 흔적에서 스스로에게 길을 찾곤 한다. 칠곡군의 지천지라는 저수지를 가다가 낙화담이라는 지역명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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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공을 피해 부녀자들이 몸을 던져 자결한 곳이 바로 저 너머의 낙화담이라고 한다. 당시 곽씨부인과 만삭의 딸이 정절을 지켜 자결한 곳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의 석담 이윤우라는 학자가 청명유석담이라는 시를 남기고 호를 낙화담의 바위를 뜻하는 석담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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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구비 머리 돌려 다시금 한숨 쉬나니

내 마음 산천이 좋아 이러함이 아니로다

근원은 본디부터 말로 못할 묘함이 있나니

이곳을 버려두고 다른 세상 물어야만 하나?"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중 9곡 용소폭포


낙화담과 멀지 않은 곳에 임진왜란 당시 활동한 한강 정구를 모신 한강 정구의 사양서당 강당이 있으니 이곳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곳에서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서 돌아가 보면 사양서당 강당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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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한강 정구가 일생동안 학업을 닦았던 칠곡군 사수동에 향인들이 그를 기념하여 1651년(효종 2)에 건립했던 강당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현재 강당인 경회당만 남아 있다. 경회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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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건물이 헐리기는 했으나 노거수 옆에 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그가 관료생활을 한 것은 학덕으로 명성이 알려지면서 1573년(선조 6년) 조식 문하의 동문이자 스승 조식의 외손녀 사위인 김우옹(金宇顒)에 의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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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흘구곡을 시로 남긴 한강 정구처럼 인생에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홉 개의 큰 전환점이 있지 않을까. 자연을 노래한 것처럼 매번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때마다의 터닝포인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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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내부를 바라보니 화장실로 쓰이는 건물 하나와 함께 강당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정구를 중심으로 청명유석담이라는 시를 남기고 호를 낙화담의 바위를 뜻하는 석담으로 정한 석담 이윤우를 배향하고 송암 이원경을 별사에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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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경회당의 평면은 그 가운데 칸의 우물 마무를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삶은 현실이면서 현실에는 그 가치를 넘어서는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 옛사람들이다. 한강 정구는 작품에서 현실의 경치, 경관을 주로 묘사했지만 시에도 주자와 성리학적 영향이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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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서당 강당에 모셔진 정구(鄭逑, 1543년 7월 9일 ~ 1620년 1월 5일)는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작가, 서예가, 의학자이자 임진왜란기의 의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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