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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8. 2021

사람의 욕심

언제마음 편하게갈 수있을까.

개인적으로 일탈을 할 때가 있다. 바로 하고 있는 지루함이 견딜 수 없을 때인데 그때는 변화할 때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필자는 고기 같이 먹을 것을 그렇게 탐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딱 적당할 수준보다는 덜 먹는 편이다.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탄소를 소비하는지 원래부터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살지만 역시나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 19가 대박으로 영향을 미쳤다. 개인적으로 잘 살고 영향을 안 미치며 몸매 관리하고 그냥 경제생활했다. 그런데 욕심 많은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만들어냈다. 코로나 19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는가? 글쎄... 중국사람들이 많은 것도 있지만 욕심 많은 사람들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다. 

베트남에서 보았던 개의 모습이다. 묶여 있지는 않았지만 참 평온해 보였다. 반려동물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키우지는 않는다. 그 개체들이 행복할 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키우고 이쁘다고 사진 찍고 올리고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준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들만의 기준이다. 그게 욕심이다. 그 동물들의 생활방식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외로우니까 혹은 이쁘니까 키울 뿐이다. 

그나마 1년에 3~4번 안식으로 가던 여행도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못 가게 되었다. 황톳물에서 수영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저런 물에도 뛰어들어가서 수영하고 싶은 심정이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않지만 아주 가끔 어머니 집에 가서 동생과 먹을 때 시켜먹을 때가 있는데 그리 많은 쓰레기와 재활용품이 나오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걸... 그리 많은 사람들이 시켜먹는다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욕심을 조금 줄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면 필자는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절제하면서 잘 살았는데 왜 이렇게 제약을 받아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사는 곳이 그나마 중심가여서 운전을 하다 보면 항상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길은 막힌다. 대체 뭘 그렇게 사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 19에 명품 소비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아 상당수는 그런 고객일 수는 있다. 명품 소비 하나(물론 몇 개를 살 수도 있다)보다 이런 식단이 그립다. 맛이 새롭고 독특하다. 조미료 법벅인 상당수 한국의 음식점보다는 훨씬 낫다. 

이 음식점 사장은 베트남 사람이었는데 필자가 나름 말(베트남의 문화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다)을 잘해서 하이네켄을 무한대로 먹었던 곳이었다. 영국에서 왔다는 영국식 영어의 엑센트가 좋았던 부부(아마도 부부가 맞을 것이다)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경험도 언제 해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올 때도 하이네켄을 무한대로 준다고 했는데 솔직히 어디인지 기억이 안 난다. 

항상 절제는 필요하다. 욕심이나 허세보다는 그냥 솔직함이 좋다. 굳이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다. 그냥 흘러가는 물처럼 자신이 흘러감을 보여주면 된다. 

어차피 기후 문제나 코로나 19와 같은 질병은 그 빈도가 잦아질 것이다. 모두 다 노력하지 않으면 뭐 결국 다 제약된 삶을 살 뿐이다. 지난주에 갔던 지역에서 20대들은 밖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 피우고 침 뱉고 담배꽁초를 아무렇지 않게 버렸다. 그들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더 많이 나이들은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 부메랑은 자신이 날린지도 모르게 날아갔다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음식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탄소를 그리 많이 배출하는 고기를 소비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소비경제는 위축된다. 뭐 언택트 한 기업의 주식은 좋아지니 필자야 좋지만 그리 살면서 사회 비난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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