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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9. 2021

현재의 한국사회

세상은 영원히 기회의 공평은 없다.

LH 직원들의 불법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부동산의 본질이 아니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학벌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 아래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을 수가 없다. 승자가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가게 하면 결국 그곳으로 가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적응만 하려는 사람이 없다. 아주 가까운 지인이 일하는 환경이 좋지가 않은데 그 환경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던가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도 그걸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식으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근본을 지적하면 무척 싫어한다. 스스로가 알고 있으면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발전할 수가 없다.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 아니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한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사시 존치론자들이 말하는 사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공정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고 싶다는 도구다. 오래전에 세계 경제질서에서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은 이미 끝이 났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명확하게 귀천이 결정이 된다. 직업에 의해 완벽한 계급사회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경비원 폭행사건에 분노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직업을 보는 관점은 똑같다. 필자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그 계층이 과연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정당한 스펙으로 학벌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가질 것이며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여길 것이다. 


드라마 팬트하우스에서 일부 표현된 것처럼 학부모들은 단지 자녀에게 부를 물려줄 마음이 있다면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물려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학벌이라는 간판이 줄 수 있는 능력의 지표를 원한다. 이런 과정 속에 학생들이 과연 시민적 감수성에 공감할 수 있을까. 먹이사슬 속에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폭력을 행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시민적 감수성이 없다면 공동선에 대한 배려도 힘들어진다. 


능력과 실력은 경제적 우위와 구별해서 보기가 쉽지 않다. 트로트와 관련된 경연 프로그램은 완벽한 능력과 실력의 가혹한 경연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승자를 보며 실력으로 올라간 성공의 아이콘처럼 소비한다. 퍽퍽한 현실이지만 그걸 보면서 안도하고 즐거워한다. 


4차 재난지원금의 지급이 결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지난 재난지원금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취약계층에 두텁게 지원되지 않았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누락된 사람들도 많고 여전히 소외된 사람들도 많다. 전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문제가 없는 방법이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기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선별지원을 한다. 대한민국을 위한 예산을 일부가 결정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엘리트주의로 외면한다. 


사람들은 주식으로 돈을 번 것을 자신의 능력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착각이다. 확실한 특정회사의 주식을 주인의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외에 숫자놀이로 하는 것은 단순 돈놀이다. 놀이를 잘했다고 해서 능력이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 화투나 카드를 잘 치면 그것도 엄청난 능력이다.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데 그냥 단순히 게임을 소비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봐야 한다. 원천으로 직접적인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주식을 하지만 돈이 불어나는 것을 하찮게 생각한다. 주식으로 버는 100만 원보다 생산적인 결과물 5만 원이 훨씬 가치 있다. 물론 5만 원이 유통될 때 똑같은 가치지만 그런 방향을 지향한다. 


IMF 이후로 금융이 경제를 재구성했으며 능력과 성공의 의미를 바꾸어놓았다. 이런 변화는 일의 존엄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금융활동이 생산적이라면 가치 있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할 경제 능력을 증진시켜주었을까. 20년도 훨씬 지난 과거에 필자는 부동산이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고 말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학벌은 지금처럼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기회가 적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기회가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게 설계된 것이다. 


모든 시민이 깨어 있지 않고 금융과 기회, 학벌, 부동산, 미디어등이 이끄는 대로 작은 기회라도 가지겠다고 나선다면 이 상황은 절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일명 소수의 엘리트에게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더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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