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오블리주

공주의 만경 노 씨 삼의사 생가지

앞서서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혹은 가족의 안전보다 공동의 선을 향해 가는 선택이 쉬울 리가 없다. 공주에 자리하고 있는 만경 노 씨 삼 형제는 모두 중봉 조헌의 문인으로 노응환 (1555~1592), 노응탁 (1560~1592), 노응호 (1574~1592)이다. 삼 형제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그 집안의 가풍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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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형제 중 노응탁은 사마시에 합격하고 청주성과 금산전투에서 참전을 했다가 젊은 나이에 순절하였으며 노응호는 청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다시 돌아와 군량을 가지고 금산에 갔으나 두 형은 이미 전사한 후 노응호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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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적한 곳에 생가지가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모두 실천한 사람들이다. 만경 노 씨 삼의사 생가지가 있던 자리에는 그냥 빈 공간이었는데 고종 29년(1892년)에 명정(銘旌)을 받아 우성면 반촌리에 정려를 건립하였으며 1982년 삼의사를 세우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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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오니 옛날에 왔을 때는 입구의 홍살문이 많이 색이 바래 있었는데 다시 진하게 색칠이 되어 있었다. 공주의 우성면 귀산리는 만경노 씨의 집성촌으로, 그 주변의 동곡리와 반촌리까지 만경노 씨들이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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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 노 씨 삼 형제 생가지에 있는 정려각은 정면, 측면 1칸에 평면적 5㎡의 홑처마 맞배 집이며 익공계 통이나 익공 자체는 생략되어 있다. 옆에 있는 정려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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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의사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9년 삼의사의 생가지가 충청남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됐으며, 1981년 건립된 사우에서는 매년 음력 8월 18일 추모 제향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작년 6월에 공주역사인물로 선정된 바가 있다. 이곳에 와보아도 그 기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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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3형제는 모두 공주의 삼의사(三義祠)와 금산의 종용사(從容祠), 보은의 후율사(後栗祠)에 제향되었다. 그중 노응탁은 금산의 칠백의총 경역 내에 있는 ‘일군순의비(一軍殉義碑)’ 비문에도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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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며 오블리제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 데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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