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자장이 창건했던 광덕산의 광덕사

창건된 지 오래된 사찰이지만 천안 광덕산의 광덕사는 호두로 더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 호두나무의 시배지에 자리한 천년고찰 천안 광덕사가 천연기념물인 호두나무의 보존과 활용, 사찰 재정 안정을 위해 호두나무 전시관을 건립하고 호두과자 생산과 판매에도 본격 나서기로 했다. 종교는 시대에 따라 정치세력화가 되기도 했었다. 광덕사를 창건한 자장은 신라의 진골 출신으로 귀국 직후 비상설 직책인 대국통(大國統)에 취임하여 황룡사를 중심으로 불교교단을 대대적으로 숙정(肅正)하고 정비해나갔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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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광덕사는 652년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 가운데 한 곳으로 89개에 달하는 부속암자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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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산의 광덕사 앞에 자리한 호두나무는 천안을 호두과자로 유명하게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천안 광덕사 대웅전 앞에 자리한 천연기념물 제398호인 호두나무는 700여 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 유청신 사신이 중국 원나라에서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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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보면 고목들이 적지 않은 사찰이다. 적지 않은 건물들이 화재로 전소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사찰이다. 1996년 이후에는 현 주지 철웅 스님이 대웅전과 천불전, 명부전, 범종각, 적선당, 보화루 등을 중창해 천년고찰로서의 위용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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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은 불교치국책을 통해 시대적인 한계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정권은 당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던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의 연합세력에 의해 견제를 받게 된다. 654년 김춘추가 왕권을 장악하고 중대(中代) 왕실을 개창하면서 밀려나갔고 결국 그는 오대산에서 은거하다가 곧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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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흘러내려고 있다. 한 모금 마시려고 하다가 옆에 핀 노란 꽃을 피면서 걷기만 한다. 자장의 불교는 중고기(中古期) 불교의 완결이자 중대 불교의 초석이 되었다. 물은 바다로 갈 것을 생각하면서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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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불교에 귀의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효령대군이 있는데 그가 바로 광덕사에 땅을 기증하고 사찰에 머물면서 쓴 부모은중경 장수태골경 합부도 보물 제124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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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후계자인 문수사리가 신라 동북방에 항상 머무르고 있다는 믿음 하에 말년에는 문수사리를 만나고자 답사까지 했던 자장의 모습이 마치 상으로 보인다. 신라 땅이 부처가 대대로 머무르고 있는 불국토라고 했던 자장은 643년 선덕왕의 요청에 따라 귀국했는데, 이때 대장경을 비롯한 각종 불교관계 물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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