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조각

지인과함께 가본천안 박물관

세상에는 무척 쉬우면서 솔깃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보통은 자극적인 것들인데 그런 것들에 자주 노출이 되다 보면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것은 외면하게 된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것에 독서나 역사, 삶의 철학 등이 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재미가 없고 굳이 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의 본질에 대해 다가서게 되고 그 길로 걷게 된다. 어느 순간 물질적인 것에 휩쓸리지 않지만 역시 단점도 있다. 같은 것을 보고 즐거워할 사람을 찾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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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지금까지 아랫지방과 윗 지방을 연결해주는 길목에 천안이 있다. 작년에 천안은 거의 와보지 못했는데 그 이전까지 자주 갔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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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시간의 조각 속에서 잊힌 역사를 발견할 필요가 있을까. 필자의 경우 현존하는 가치를 넘어선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함이기도 하다. 쉽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종교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깨달았다는 전지자를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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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형도 사진은 학교 다닐 때 참 많이 보았다. 당시에 GIS가 처음 부상하기 시작할 때였는데 지형정보를 넣고 분석된 정보를 통해 도시를 분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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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시간은 자연스럽게 조각이 난다. 원삼국, 삼국기,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일제, 현대로 오면서 어떤 것은 발견되어 이렇게 박물관에서 볼 수 있고 어떤 것은 언제 발견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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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죽음을 상상하면서 그 존재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본다. 태어난 이유는 잘은 모르겠지만 살아야 될 이유를 찾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돈이나 좋은 차, 좋은 집 같은 것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천안에서도 적지 않은 석곽묘가 발굴되었는데 대형급 고분도 있고 그중 1호 돌덧널무덤은 새로운 변화의 시점을 보여주는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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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있기에 다른 시작이 있다. 시체 자세를 사바아사나라고 하는데 원래 인간들은 죽지 않고 살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인류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지고 지구는 인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생명이 한꺼번에 소멸하는 대신, 새로운 세대가 이전 세대를 대체할 방법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죽음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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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물건들을 볼 수 있다. 죽음이 있기에 오히려 살아있음이 가치가 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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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는 않은 공간에 천안 삼거리를 오갔을 사람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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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천안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하기 위해 도솔의 땅을 살펴보고 내린 이름이었다. 그리고 고려시대 천안지역에는 천안부가 설치되었다. 시간이 흘러 조선시대는 목천에 목천현이라 부르고 현감을 두었으며 직산현에도 현감을 둔 적이 있었다. 천안시는 천원군과 분리되었다가 오늘날 통합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시간의 조각이 합쳐져서 세상을 이룬다. 한 명도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


by. 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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