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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1. 2021

강호의 삶

서거정의 비문이 남겨진 삼정동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사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과거에 문장과 글씨에 능한 사람에게 비문을 청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역사 속에서 문장과 글씨에 능했던 사람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조선시대의 인물로 서거정이라는 사람이 있다. 문장이 이미 일가를 이뤘으며 다양한 학문을 접해온 그는 문장과 글씨에 두루 능해 과거에 네 번 과거에 급제하고 예종 때 대제학에 올랐던 사람이다. 

도시에 식수원으로 공급되는 물을 저장하는 곳이기에 곳곳에 생태습지를 조성해두었는데 삼정동 생태습지도 그런 곳 중 한 곳이다. 삼정동 생태습지로 가는 길에는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노란색의 별꽃 같은 유채꽃을 잠시 바라본다. 

입구에 심어져 있는 유채꽃 단지에는 다른 꽃과 유채를 혼합 식재해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여름과 같은 온도가 저녁이 되자 조금씩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삼정동 강촌마을 끝에 위치한 민 씨 종갓집을 지나면 인도가 없어 차가 다니는 도로를 100미터 정도 걸어가야 한다. 생태습지의 비점오염 저감시설은 산이나 도로, 농경 수로를 통해 유입되는 각종 비점오염원을 다양한 수생식물의 자정작용을 거치게 하여 오염의 강도를 약화시켜준다. 

걸어서 내려가다 보니 하늘하늘한 이쁜 꽃이 필자를 반겨준다. 한 송이의 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서거정의 글을 보기 위해 움직여본다. 

서거정의 글은 바로 박효함신도비에서 볼 수 있다. 박효함은 조선조에서는 박효함이 있는데, 그는 청주목사를 거쳐 강릉대도호부사에 이르렀던 사람이다. 박효함의 형제는 네명이었는데 각각 효제충신이라는 한자를 들어가도록 지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박진이 아들들이 모두 나쁜 데로 떨어지지 않게 하여 능히 아름다운 일을 지키게 하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길을 걸어서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이날 본 대청호 비경은 그야말로 조용하면서도 소박한 일상에 하루의 피곤함이 조금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걷다가 잠시 보이는 풍광에 가슴이 탁 트이고, 너무 편안한 풍경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걸으니 이제 땀이 차기 시작했다. 벌써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걷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대청호를 바라보기도 하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무얼 낚고 있나 멀리서 쳐다보기도 한다. 

청주 목사 박효함(朴孝諴)도 말하기를, ‘백성들의 말이 금년의 대·소맥의 성함은 근년에 없던 바이다.’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106권, 세종 26년 9월 21일 1444년 청주 목사(淸州牧使) 박효함(朴孝諴)과 판관(判官) 김양(金壤)에게 옷 한 벌씩 내려 주었다. 박효함은 관직에 있어서 백성들의 삶을 잘 살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박효함의 묘의 뒤에는 두 아들인 박원직과 박원창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박효함은 청백리로 기록되었으며 65세 이상의 관원을 외직을 보내지 않는다는 대간들의 논핵이 있었음에도 노구를 이끌고 강릉으로 부임해 임지에서 순직해 강능공파의 파시조가 되었다. 

이곳에 비문을 남긴 서거정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광나루를 오갈 때마다 광나루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읊으며 그는 말년에는 은퇴하여 세상을 멀리한 채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 했다. 대청호반에 자리한 박효함의 묘와 서거정이 쓴 신도비를 보며 잘 사는 삶에 대한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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