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에 대한 집착과 인간에 대한 광기
북유럽의 소설가 얄마르 쇠데르베리의 작품인 닥터 글라스는 1905년에 나온 작품이다. 안락사라던가 죽음에 대한 권리가 희박했던 시기에 작가는 글라스라는 의사를 통해 깊은 고민을 하고 그것을 소설로 풀어내었다. 서른세 살의 가정의 글라스는 의대를 다니던 시절에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노년에는 바닷가에 집 한 채 짓고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던 그의 앞에 젊은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60이 다된 나이의 목사 그레고리우스의 부인으로 남편과 관계를 맺는 것은 혐오한다고 글라스에게 털어놓는다. 글라스는 그녀를 위해 목사에게 금욕을 해야 한다고 권하지만 목사는 그 말을 듣지 않는다. 글라스의 관점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잣대로 보았을 때 옳다면 안락사나 낙태, 이혼도 적극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레고리우스의 부인이 성관계를 하기 싫어한다면 그것은 부부 강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를 느끼게 된다. 그 권태에서 빠져나오고 무기력감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게임에 중독되고 스포츠를 즐기고 취미생활을 한다.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은 권태에서 벗어나기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쪽으로 너무 집중하다 보면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람에게 집중이 되면 스토킹이 되는 것이고 사회범죄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고립되다 보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게 된다.
닥터 글라스는 병을 고치는 의사이다. 즉 인간의 몸에서 해가 되는 것을 도려내는 사람이다. 글라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레고리우스 목사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레고리우스 목사는 인간세상에서 도려내야 할 병원균처럼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젊은 목사 부인은 같이 미국으로 떠나자는 젊은 애인이 있다. 대체 글라스는 무슨 생각일까.
"맨 먼저, 나는 정말 목사를 죽이려는 의지를 갖고 있을까? '의지'란 무슨 말일까? 인간의 의지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서로 상반된 수많은 충돌들의 종합체이다. 하지만 우리는 허구를 필요로 하며, 의지라는 관념보다 더 필요한 허구는 없다. 그러면 자, 내게 이 일을 행할 의지가 있을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p138
인간이란 무기력한 존재이기도 하면서 매우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도덕은 시대에 따라 옳을 때도 있었지만 틀릴 때도 적지 않았다. 무엇이 정답일까? 그건 누구도 쉽게 단언하기는 힘들다.
“죽을 권리가 투표할 권리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절대적인 인권임이 인정되는 날이 올 것이며 또 와야만 한다. 그날이 오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은 ‘범죄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책에는 이해를 도울만한 사진과 그림 등이 적지 않게 담겨 있다. 시대를 앞선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존엄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도와주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