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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30. 2021

나아감의 목적

오래간만에 찾아간 공주향교의 시간

나아간다는 것은 목적성을 가질 때 추진력을 가질 수가 있다. 마음은 아주 고요하면서 아무런 저항감이나 노력 없이 그 순간에 하고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한다. 우리 내면에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본인은 이미 알고 있다는 진실이 있다. 나아감의 동력이 있을 때 에너지가 온전히 그곳에 쓰일 수가 있다. 배움이라는 것 역시 목적성이 있을 때 지속가능성이 있다. 공주는 가까운 곳에 자리한 도시로 처음 찾았던 곳이 바로 공주향교였다. 7~8년 만에 다시 찾은 공주향교는 마치 처음에 와본 곳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웅진동 숭산 기슭에 있던 것을 1623년 순찰사 신감(申鑑)과 목사 송흥주(宋興周)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공주향교의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東廡)·서무(西廡)·신문(神門)·제기고(祭器庫)·명륜당·강학루(講學樓)·동재(東齋)·서재(西齋)·존경각(尊經閣)·외삼문(外三門)·고직실(庫直室) 등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후회하면서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일생을 보낸다고 한다. 그럴 때 그 순간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감정을 소모하는 그 순간을 현명하게 넘기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오강표 순절지이기도 한 공주향교는 공주에서 많은 운동이나 행사를 주도하기도 했었다. 만세둑으로 불리는 석송리 무지개울둑에는 1969년 기념광장이 조성됐으며, 1984년 주민들이 3·1독립만세기념비를 세웠고, 1995년 공주향교 주관으로 3·1만세사적비를 건립했다.

공주향교(公州鄕校, 충남유형문화재 제75호)는 조선시대 성현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석전대제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매년 공주시 교동 대성전(大成殿)에서 춘기 향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한다. 

향교의 대성전에 모시는 4성 10철 18현은 유교의 창사자인 공자를 위시한 4성(증자, 맹자, 안자, 자사)18현(최치원(崔致遠)·설총(薛聰)·안유(安裕:安珦)·정몽주(鄭夢周)·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박세채(朴世采)·김인후(金麟厚)·조헌(趙憲)·김집(金集) 등 )18 명이다. 

대전(大殿) 안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인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여 안자(顔子)·자사(子思)는 동쪽에, 증자(曾子)·맹자(孟子)는 서쪽에 배치하게 된다. 1104년인 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3년에 벽옹문선왕전(辟雍文宣王殿)을 대성전이라 한 뒤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중요한 무언가를 배워야하는데 그것을 경험할 유일할 길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같은 사건이었음을 무의식이 알고 있는 것은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이 제창한 이론이다. 무의식이 설사 의식적인 마음에 상처를 준다 해도 충동을 실현한 방법과 수단을 고안하게 된다. 삶의 위기가 주는 또 다른 이점은 자신에 대한 자각이 커진다는 점이다.

배움으로 새로운 것을 계속 깨닫게 되면 어느 순간 그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게 된다.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지 못하지만 끊임없이 시도하는 무의식이 생겨난다. 

무언가를 배운고 익힌다는 것은 쓰일 것을 생각하기에 노력하는 것이다. 향교는 왕의 윤음(綸音: 임금의 말씀)과 중대한 정치적인 내용을 지방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곳이기도 하였는데 지식인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며 지방 지식인들인 양반과 중앙 파견의 수령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지방 지식인은 나라에 대한 불만 또는 불평을 할 수 있는 여론의 장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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