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감의 목적

오래간만에 찾아간 공주향교의 시간

나아간다는 것은 목적성을 가질 때 추진력을 가질 수가 있다. 마음은 아주 고요하면서 아무런 저항감이나 노력 없이 그 순간에 하고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한다. 우리 내면에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본인은 이미 알고 있다는 진실이 있다. 나아감의 동력이 있을 때 에너지가 온전히 그곳에 쓰일 수가 있다. 배움이라는 것 역시 목적성이 있을 때 지속가능성이 있다. 공주는 가까운 곳에 자리한 도시로 처음 찾았던 곳이 바로 공주향교였다. 7~8년 만에 다시 찾은 공주향교는 마치 처음에 와본 곳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MG0A7275_resize.JPG

웅진동 숭산 기슭에 있던 것을 1623년 순찰사 신감(申鑑)과 목사 송흥주(宋興周)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공주향교의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東廡)·서무(西廡)·신문(神門)·제기고(祭器庫)·명륜당·강학루(講學樓)·동재(東齋)·서재(西齋)·존경각(尊經閣)·외삼문(外三門)·고직실(庫直室) 등이 남아 있다.

MG0A7276_resize.JPG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후회하면서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일생을 보낸다고 한다. 그럴 때 그 순간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감정을 소모하는 그 순간을 현명하게 넘기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MG0A7278_resize.JPG

오강표 순절지이기도 한 공주향교는 공주에서 많은 운동이나 행사를 주도하기도 했었다. 만세둑으로 불리는 석송리 무지개울둑에는 1969년 기념광장이 조성됐으며, 1984년 주민들이 3·1독립만세기념비를 세웠고, 1995년 공주향교 주관으로 3·1만세사적비를 건립했다.

MG0A7279_resize.JPG

공주향교(公州鄕校, 충남유형문화재 제75호)는 조선시대 성현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석전대제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매년 공주시 교동 대성전(大成殿)에서 춘기 향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한다.

MG0A7280_resize.JPG

향교의 대성전에 모시는 4성 10철 18현은 유교의 창사자인 공자를 위시한 4성(증자, 맹자, 안자, 자사)18현(최치원(崔致遠)·설총(薛聰)·안유(安裕:安珦)·정몽주(鄭夢周)·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박세채(朴世采)·김인후(金麟厚)·조헌(趙憲)·김집(金集) 등 )18 명이다.

MG0A7282_resize.JPG

대전(大殿) 안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인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여 안자(顔子)·자사(子思)는 동쪽에, 증자(曾子)·맹자(孟子)는 서쪽에 배치하게 된다. 1104년인 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3년에 벽옹문선왕전(辟雍文宣王殿)을 대성전이라 한 뒤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MG0A7284_resize.JPG

중요한 무언가를 배워야하는데 그것을 경험할 유일할 길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같은 사건이었음을 무의식이 알고 있는 것은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이 제창한 이론이다. 무의식이 설사 의식적인 마음에 상처를 준다 해도 충동을 실현한 방법과 수단을 고안하게 된다. 삶의 위기가 주는 또 다른 이점은 자신에 대한 자각이 커진다는 점이다.

MG0A7286_resize.JPG

배움으로 새로운 것을 계속 깨닫게 되면 어느 순간 그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게 된다.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지 못하지만 끊임없이 시도하는 무의식이 생겨난다.

MG0A7288_resize.JPG

무언가를 배운고 익힌다는 것은 쓰일 것을 생각하기에 노력하는 것이다. 향교는 왕의 윤음(綸音: 임금의 말씀)과 중대한 정치적인 내용을 지방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곳이기도 하였는데 지식인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며 지방 지식인들인 양반과 중앙 파견의 수령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지방 지식인은 나라에 대한 불만 또는 불평을 할 수 있는 여론의 장도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화성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