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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15. 2021

역사의 가정

유윤의 향나무와 정신보의 송곡서원

시간은 방향성을 가지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흘러가지만 보통은 일정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의 과거는 바꿀 수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결정이나 행동을 후회하기도 한다. 과거가 만들어놓은 감옥의 틀에 갇혀 살기도 한다. 시간여행은 빛의 속도 (670,214,995 mile/hour)로 움직일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상상의 산물이지만 시간의 속도를 넘어설 수 있는 플래시맨을 제외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산에 자리한 송곡서원은 지나가버린 과거를 회상하며 머물렀던 사람 두 명의 이야기가 새겨진 곳이다.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에 반대하여 낙향하여 향나무를 심은 유윤과 중국에서 건너와 서산정 씨의 시조가 된 정신보다. 

보기에도 좋고 향도 은은한 향나무는 한옥의 재료로도 사용했는데 아무나 사용할 수는 없었는데 왕이 사는 궁궐이나 힘 있는 사대부 저택 정도나 되어야 사용할 수 있었다. 

송곡서원에 모셔진 정신보(鄭臣保)는 송(宋)의 원외랑(員外郞)으로 송이 망하자 바다로 떠내려와 서산(瑞山)에서 살았다. 송곡서원에는 1693년(숙종 1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신보(鄭臣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오랑캐 먼지는 온 천지에 가득하고 / 胡塵漲宇宙

만리에 유락한 외로운 신하 / 萬里落孤臣

어느 날 이 세상 바르게 되어 / 何日乾坤正

또다시 우리 조 씨(趙氏)의 봄이 돌아올까 / 重回趙氏春


- 정인경 (정신보의 아들)


시를 쓴 아들을 비롯하여 송곡서원에는 유방택(柳方澤)·윤황(尹璜)·유백유(柳伯濡)·유백순(柳伯淳)·유윤(柳潤)·김적(金積)·김위재(金偉材)를 추가 배향하였다. 

정신보는 남송시기 절강지방의 명문인 포강정씨의 후손으로 명성이 대단했던 사람이다. 북방 오랑캐의 잦은 침략 속에서 체계화되었던 남송 성리학은 ‘의리사상’이 강했으며 정신보의 집안이 본디 춘추학을 가학으로 하였다. 

역사의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이곳의 윤유와 정신보는 과거가 잘못되었음을 의리로서 후회하였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옳고 그름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단순하지가 않다. 송곡서원의 사우에는 서편에서부터 정신보·정인경·유방택·윤황·유백유·유박순·유윤·김적·김위재의 순으로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바다를 건너 고려의 서산에 와 살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절개를 굳게 지킴으로 생애를 마쳤던 정신보는 대표적인 서산군사람이 되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생각했지만 서산 간월도(看月島)에 정착하였다. 당시 덕산(德山 : 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살던 오영로(吳永老)의 딸과 혼인하여 서산 양렬공(襄烈公) 정인경(鄭仁卿)과 정준경(鄭俊卿) 두 아들을 낳았다.

역사의 가정도 없고 시간의 패러독스도 없지만 적어도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를 남기는 것은 그 순간 무언가를 노력했기 때문이다. 윤유가 세조를 피해 서산에 내려와서 향나무를 심었기에 수백 년이 지나고 나서 저런 멋들어진 향나무를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에 했던 것은 현재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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