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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2. 2021

문명의 시작

음성읍초천 1리구례골마을

이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은 분명한 진리다. 그 어떠한 것도 처음부터 시작한 것이 없다. 앞서서 만들어진 것이 있고 그걸 토대로 새롭게 조합하거나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것들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들의 완성을 보고 다시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확실히 적지만 대도시와 스마트폰, 플랫폼, 메타버스 등을 만든 것은 농촌기반의 문명이 있기에 가능했다. 

농촌이나 자연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그 변화를 보기 위함을 넘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천 년간 문명을 아주 천천히 발달시켜온 그 과정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경작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식량 생산은 원시적 농촌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데 새로운 기회는 결국 안정적인 기반과 시간 아래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음성군에서도 작은 마을로 초천 1리 구례골 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마을마다 음달말, 윗말, 양달말, 강달말등으로 내려오고 있고 초천 1리 문화생활관이 있는 곳에는 김영익 선생 의열 추모비와 마을 유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마다 이렇게 유래비가 있는데 그 유래를 읽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농촌이 형성되면서 오래된 이야기가 쓰여 있기 때문이다. 벼농사의 도입은 가용 식량의 급속한 증가를 가져와 인구 증가에 크게 도움을  주게 된다. 이곳의 삼봉(三鳳) 김영익 선생은 초천리 148번지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로 하천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향약은 사회규범을 지키지 않은 자에게 제재를 가함으로써, 농촌의 질서 유지와 통제 기능을 수행했었다. 이곳은 음성에서도 유명한 인삼밭도 아니고 논농사를 하는 곳도 아닌데 다른 작물을 키우기 위해 고랑을 파놓았다. 

걸어가다 보면 쉼터와 다리도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가끔은 징검다리도 보이기도 한다. 어느 곳을 보아도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초천 1리의 지명 초천은 냇가에 풀이 많아 붙여진 이름. 순우리말로 '풋내'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생태계를 만드는 첫 단추는 농업이다. 농업에서 필수적인 것은 물인데 물이 흘러가는 곳 옆에는 논이 자리하고 있다. 음성읍 초천 1리 구례골 마을은 2017년 농림부로부터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역량 강화 용역을 해서 2018년에 완료하였다고 한다. 

안동 김 씨 사당이 구례골마을에 자리한 것을 보니 안동 김 씨가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음성군의 사정리에도 안동 김 씨가 세거 했다고 해서 음성 강당말 강당을 본 기억이 있다. 이곳에도 안동 김 씨 사당의 건너편에 강달말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구례골은 행정구역 통폐합 전에는 덕전리 지역. 마을에 안동 김 씨 세거지가 있어, '예절을 구한다' 하여 구례골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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