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회덕현감을 지냈던 남산 서원의 유지화

대전에 살고 있어도 회덕이라는 지역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하물며 다른 지역에 살면서 회덕이라는 지역명을 아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옛 지명을 많이 알고 옛사람을 만나지만 보통은 바로 지금의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전광역시라고 불리는 곳은 옛날 회덕이라는 지명으로 훨씬 오랜 시간 불렸던 곳이다. 그 이름의 의미조차 좋다. 회덕현 관아는 지금은 없어지고 초등학교가 그 위를 덮고 있지만 회덕현감을 지냈던 사람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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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덕현감을 지냈던 사료를 찾다 보니 유지화라는 사람이 있었다.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는데 그는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그 유지화라는 사람이 바로 김제의 능제가 자리한 남산서원에 모셔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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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능제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자리하고 있는 남산서원이다. 그는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회덕 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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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기보다는 새롭게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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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서원의 사당이름은 남산사다. 진주유씨는 여러 번 들어본 기억이 난다. 그의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희춘(柳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유광복(柳光復)이며, 어머니는 어머니는 승지 홍치상(洪致祥)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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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되었으나 1970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기에 그 역사가 짧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4칸의 영모재(永慕齋), 경의문(景義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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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꼭 앞에 있을때뿐만이 아니라 옛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물론 답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겠지만 회덕이라는 지역명이 지금보다 널리 쓰인 것을 보면 중부권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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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회합,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학문의 토론이라는 것은 생각의 힘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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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화는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문에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당대의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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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서원에서 조금만 나오면 무궁화나무를 빼곡히 심어놓은 곳을 볼 수 있다. 어떤 용도에서 심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궁화 뒤로 능제가 보인다. 그는 1680년(숙종 6)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죽었으며 김제 남산서원(南山書院)에 제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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