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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1. 2016

돈은 피보다 진하다.

자식에 대한 의무

부모들은 자식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를 고민한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부모라면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다. 부모는 나를 있게 해 준 존재들이다. 그 부모 역시 누군가가 만들어준 존재가 있다. 최근에 그런 고마운 존재들을 아무렇지 않게 학대하고 심지어 존속살해에 이르는 사람들도 흔하지 않게 기사로 만나게 된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계속 존속살해 건수가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가해자들은 학대나 자식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보면 돈이다. 돈이 어떤 가치보다 앞서 있다는 왜곡된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색다를 것도 없어 보이지만 씁쓸함을 넘어서 먹먹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그런 기사를 보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저런 XX은 X, XXXX, 죽여야 한다. 살려두어서는 안된다. 어떻게 자신의 부모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자식의 태도는 부모의 책임도 일부분 포함이 되어 있다. 자식을 키워준 부모에게 무슨 죄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라는 말이 있듯이 책임이 있다. 


뉴스나 시사프로에서 나온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웠고 심지어 돈도 주고 집까지 사주고 주먹구구식 사업의 뒷받침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 고마움(?)을 모르고 더 요구하고 심지어는 존속살해에 이르기까지 한다. 부모는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 자식에게 해줄 만큼 해주었는데 그런 자식들은 왜 은혜를 모를까?


앞만 보고 달려갔다. 


대부분의 가장(과거에는 아빠)들은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갔다고 한다. 당신이 앞만 보면서 달려갈 때 자식들은 샛길로 새기 시작했다. 샛길로 새기 시작했다는 것을 돈 버는 가장들이 알 때쯤에는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경우가 적지 않다. 하루라도 혹은 주말을 일하지 않으면 바로 다음 주 아니 내일 먹고살 수 없다면 모를까.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자식들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면 뒤도 돌아보고 주변 상황도 보면서 천천히 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주말부부나 외국에서 일하는 가장들은 더욱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간사하다. 그것이 자신의 배우자나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필요에 의해 사람의 가치를 매긴다. 돈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 중에 하나일 뿐인데 그것이 목적 자체가 되어버린다면 문제는 커진다. 삶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부모의 직무유기는 바로 치명적인 상황으로 연계되지 않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된 상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은 필요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다. 


상당수의 부모들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을 만드는 방법(바람직한 형태로)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준다. 열심히 가르쳤는데 취직을 못해서 혹은 결혼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능력도 없는데 그냥 근거 없는 비전을 가진 사업을 위해 등등 이 모든 것을 지원한 부모의 책임이다.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전부가 되는 순간 모든 비전이 사라진다. 돈 앞에 모든 가치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자식을 길러낸 건 부모다.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몰라도 지금의 한국 교육은 그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면 그것은 온전히 부모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위해서 특정 직업을 강요하라는 말이 아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실패는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실패했을 때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실패는 진정한 의미의 실패가 될 수 없다. 그냥 의미 없는 도전이었을 뿐이다. 절실하게 도전하지 않았기에 의미도 생길 수도 없다. 그런 의미 없는 도전을 하게끔 만든 사람 중 가장 큰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준 적이 있던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적어도 성인의 나이에 이른 자식이라면 실패에 진실된 모습으로 직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실패를 구렁텅이라고 생각하고 연명하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다.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삶이 팍팍해질수록 이런 일들은 더욱더 비일비재 해질 것이다.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깊게 생각해야 될 때가 왔다. 부모는 아무나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나 부모가 되기도 한다. 부모는 적어도 자식들을 이끌어야 되는 사람이다.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자식을 낳기로 생각했다면 더욱더 신중해지고 그 역할에 충실해져야 한다. 자식의 신체는 그냥 자라지만 정신은 부모가 형태를 잡아주지 않으면 성숙되지 않는다. 그것이 부모로서 당신이 평생을 가져가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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