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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5. 2021

화폭 속의 동정호

풍경이 그림이 되어 다시 살아난다.

붓터치를 그렇게 하듯이 자연의 붓터치는 마음속에 다르게 나릴 때가 있다. 이날 동정호가 그러했다. 허수아비와 정원이 더 많이 들어선 동정호는 흐드러진 가을의 풍경이 화폭 속에 내려앉듯이 그림 속에 보인다. 이 좋은 계절을 조금만 더, 그 진한 색을 잠시만 더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스케치가 아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명암이 분명하게 표현되어야 원근감이 느껴진다. 물론 화가들 중에서 그런 그림자나 거리감을 그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다. 

한 지역을 사계절 동안 보고 나서도 또 다른 관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공간을 쪼개고 재해석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단편적으로 보면 글이 똑같아질 수밖에 없다. 그 중간에 새로운 것이 들어서면 그 대상을 중심으로 쓸 수는 있다. 

멀리서 보았더니 평일에 왜 이리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모두 허수아비들이었다. 형형색색의 허수아비들이 동정호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도 많아 보이고 마치 이곳에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 역시 멀리서 보면 허수아비처럼 보이고 가까이 봐야 그 사람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물에 비친 사물의 명암이 명확해서 같은 세상이 물 위에 하나 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의 생은 의지와 용기에 감동하며 걷고 싶은 길로 인도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작은 일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가 있는 동물이다. 

이렇게 명확하게 또렷하게 보이는데 이걸 다른 걸로 옮기려면 달라진다. 글로 옮기는 것은 일상이지만 이 풍광이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된다면 또 달라진다. 가야금을 정자에서 연주하고 하동의 전통주를 한 잔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데크길에 서서 칠선봉과 구재봉 너머에서 내려오는 햇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운무가 오히려 운치를 더해준다. 잠시 멈추어서서 가을바람과 이 시간을 느껴본다. 

출렁다리로 와서 악양루를 바라보니 이 순간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다시 반대편도 바라본다. 습기를 품은 구름이 산자락에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 가을색으로 물들 나무는 위에서 있었고 물 위에도 떠 있었다. 저런 기법은 마치 모네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더 나무의 끝자락에 구름이 깔려있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섬이 있다. 나무 아래에는 대나무로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 누워 있으면 그냥 하루가 편안해진다. 

이번 허수아비 전시는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평사리 황금들판을 찾는 관광객에게 보다 안전한 행사와 함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2㎞ 구간에 씨름, 혼례, 강강술래, 소싸움, 서희와 길상이 등의 테마로 각 읍면, 마을, 개인, 단체, 농민회 등이 제작한 단독·군집형 허수아비 1,0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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