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속의 동정호

풍경이 그림이 되어 다시 살아난다.

붓터치를 그렇게 하듯이 자연의 붓터치는 마음속에 다르게 나릴 때가 있다. 이날 동정호가 그러했다. 허수아비와 정원이 더 많이 들어선 동정호는 흐드러진 가을의 풍경이 화폭 속에 내려앉듯이 그림 속에 보인다. 이 좋은 계절을 조금만 더, 그 진한 색을 잠시만 더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스케치가 아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명암이 분명하게 표현되어야 원근감이 느껴진다. 물론 화가들 중에서 그런 그림자나 거리감을 그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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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을 사계절 동안 보고 나서도 또 다른 관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공간을 쪼개고 재해석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단편적으로 보면 글이 똑같아질 수밖에 없다. 그 중간에 새로운 것이 들어서면 그 대상을 중심으로 쓸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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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았더니 평일에 왜 이리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모두 허수아비들이었다. 형형색색의 허수아비들이 동정호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도 많아 보이고 마치 이곳에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 역시 멀리서 보면 허수아비처럼 보이고 가까이 봐야 그 사람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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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물에 비친 사물의 명암이 명확해서 같은 세상이 물 위에 하나 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의 생은 의지와 용기에 감동하며 걷고 싶은 길로 인도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작은 일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가 있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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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명확하게 또렷하게 보이는데 이걸 다른 걸로 옮기려면 달라진다. 글로 옮기는 것은 일상이지만 이 풍광이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된다면 또 달라진다. 가야금을 정자에서 연주하고 하동의 전통주를 한 잔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데크길에 서서 칠선봉과 구재봉 너머에서 내려오는 햇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운무가 오히려 운치를 더해준다. 잠시 멈추어서서 가을바람과 이 시간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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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로 와서 악양루를 바라보니 이 순간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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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반대편도 바라본다. 습기를 품은 구름이 산자락에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 가을색으로 물들 나무는 위에서 있었고 물 위에도 떠 있었다. 저런 기법은 마치 모네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더 나무의 끝자락에 구름이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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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를 건너면 섬이 있다. 나무 아래에는 대나무로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 누워 있으면 그냥 하루가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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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허수아비 전시는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평사리 황금들판을 찾는 관광객에게 보다 안전한 행사와 함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2㎞ 구간에 씨름, 혼례, 강강술래, 소싸움, 서희와 길상이 등의 테마로 각 읍면, 마을, 개인, 단체, 농민회 등이 제작한 단독·군집형 허수아비 1,0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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