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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5. 2021

오징어 게임 2

오징어는 요리에 써야 제맛이다. 

제목을 보고 혹시나 속편이 나온 사람이 있다면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냥 관련한 글을 두 번째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을 모두 봤지만 필자에게 오징어 게임을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봐도 좋고 안 봐도 좋지만 생각만큼 좋은 작품은 아니라는 것은 말해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걸 못한 것을 가지고 할 수 있었는데라고 말하면서 변명한다. 할 수 있었는데라는 가정은 필요 없다. 그냥 안 한 거고 못한 거고 흥미가 없었던 거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못한 변명 중에 하나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가 싫다는 것이다. 그냥 공부를 못한 거다. 공부가 싫은데 당연히 잘할 수가 없다. 공차기 싫은데 난 볼 감각이 달라서 축구선수가 되었다면 이라는 가정이 필요 없듯이 말이다. 


악기를 배우기 싫은데 잘 배울 수 없고 골프 하기 싫은데 골프를 잘 칠 수 없다. 잘 못 치는데 만약에 약속하면 돈을 내면 된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우선 기본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 모두가 믿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게 최고의 과제다. 살아남기 위해선 말이다. 오징어 게임에서의 생각할 관점이라면 룰을 정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잘 뽑아야 된다는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주는 이들에게는 룰을 정하는 사람을 정할 권리조차 없다. 


그들은 공정하다고 말하지만 공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수능이라던가 시험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정말 공정할까. 우선 겉으로는 참 공정해 보이지만 공정하지 않다. 그리고 줄을 세운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과 룰에 사람을 끼워 맞춘다. 선거에서 정치인을 잘 선택하려면 우선 과정 속에서 언론이 하는 말은 모두 믿지 않으면 된다. 언론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론을 몰이하려기 때문이다. 과정이 정의롭다면 몰라도 정의롭지 않기에 그냥 패스하고 마지막에 팩트만 확인하면 된다. 


오징어 게임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 자신의 입맛에 맞춘 사람들만 모으는데 그건 어떤 특정지역에 모여 살려고 하는 문화와 비슷하다. 문화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유튜브에서 가장 안 좋은 기능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에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틀어주니 괜찮은데 만약 그것이 이념이며 사회현상이며 사고의 과정이라면 어떨까. 계속 그곳에 있다면 결국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 된다. 공정해야 할 언론들조차 강남, 서울, 경기 집값만 다루고 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데 채널의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과연 그 정보가 공적인 가치가 있을까?


주변의 사람들도 있고 TV 방송 혹은 시사프로 등에서 나온 사례 혹은 오징어 게임 속의 사람들을 보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남들이 좋아 보이는 것을 위해 산다. 개인적으로 돈을 쓸데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돈이 너무 넘쳐나서가 아니라 수입 대비 지출이 늘어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굳이 무리해서 사고 싶은 것도 없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지가 않다. 그냥 필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따름이다. 어떤 것이든지 한 번 사면 상당히 오래 잘 쓴다. 주로 사용하는 DSLR도 산지가 12년이 되었는데 그 이후로 업그레이드 모델이 3개가 넘게 나왔는데 굳이 교체 이유를 모르겠다. 클러치백이나 지갑도 지인이 선물로 사주었는데 검은색이라 어떤 것에 매칭해도 무리가 없다. 슈트나 캐주얼, 반바지, 반팔, 더블 코트, 패딩... 어떤 것에도 잘 어울린다. 굳이 두 개가 있을 필요가 없다. 고민할 시간만 늘어날뿐. 


옛날에는 시계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 없다. 물론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있으면 좋겠지만 굳이 좋은 시계를 사면 예전에 샀던 시계는 안차고 다닌다. 원래 가장 좋은 것을 차고 다니게 된다. 오랜 시간을 같이 했던 필자의 시계에게 그런 외로움을 주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오토바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두카티 기본 모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무리 없이 살 수도 있다. 그런데 별로 안 타고 다닐 것 같다. 여행을 가서 여러 번 타봤는데 영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처음 30분만 좋고 빨리 가져다주고 싶었다. 물론 두카티는 이쁘다. 전시해둘 곳도 없는데 굳이 그 오토바이가 필요할까. 


돈이라는 것은 정말 내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만큼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고 있으면 굳이 많이 없어도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한 달 정도만 버틸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는 곳에서도 나름 학군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있는데 그곳의 아파트는 비싸다. 비싼 이유를 물었을 때 모두 학군을 말한다. 글쎄... 모르겠다. 아파트도 오래되었고 생활권도 그렇게 좋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결국 남들이 좋아 보이는 것에 가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돈의 크기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가끔 바닷가를 가면 좋은 뷰를 가진 조금 오래된 연식의 아파트를 볼 때가 있다. 부동산으로 가던가 앱에서 그 아파트 가격을 확인해본다. 참 합리적이고 착한 가격이다. 그런 때면 가끔 사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든다. 왜 엘시티에 살려고 할까. 가본 적이 있지만 그렇게 좋은 뷰도 아니었는데 굳이 말하면 가성비는 떨어진다. 사고 싶어도 1년에 몇 번이나 갈 것이며 인테리어도 새로 해야 된다는 생각에 혹은 임대를 놓으려면 굳이 여기에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에 그냥 뷰를 보는 것에 만족하고 떠난다. 


어떻게 보면 오징어 게임은 주식과 비슷해 보인다. 지렛대의 원리는 생각해도 역 지렛대를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긴 나무를 이용해서 지렛대를 사용한다고 치자. 만약 저 건너편에 있는 것이 너무 무거운 게 올라온 순간 긴 지렛대의 끝에 있는 자신은 튕겨져 나간다. 자신의 역량에 맞는 지렛대를 사용해야 하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지렛대를 그렇게 떠들어대면서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을 들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주인공은 쌍용자동차의 사태의 피해자로 표현되었는데 그 이후의 길은 자신이 망친 것이다. 개인적으로 100만 원 가치의 주식을 가진 회사도 무슨 짓을 하는지 계속 살펴보는데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제품이 잘 팔리는지 기술변화가 어떻게 되는지 안보는 것은 직무유기다. 쌍용자동차 사태로 인해 피해본 분들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지속성이 있을지 혹은 빠져나갈 때는 아닌지를 생각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회사의 대표가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임직원을 현혹하는 것을 속으로 코웃음치고 넘어갈 권리도 있듯이 몇 년을 열심히 회사를 위해 몸 바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마장이 있었다.  물론 과천경마장을 생중계하면서 마권을 파는 곳이었다. 장이 열릴 때 그곳을 지나면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볼 수 있었다. 오징어 게임의 사람들처럼 그 누구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자신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다. 자신이 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근거 없는 믿음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삶이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확률을 조금씩 높이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 쉽게라는 것은 없다. 쉬운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징어는 게임이 아니라 요리에 써야 확실하게 만족할 수 있는 가치가 되어준다. 그게 간단한 숙회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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