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태의 폭력에도 낭만 따윈 없다.
강원도는 안 가본 지가 몇 년이나 되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전국으로 음식기행을 떠난다면서 갔던 그때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살고 있는 곳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다. 강원도는 바다가 깊은 곳이어서 유난히 코발트색의 바다를 보여주는 곳이 많다. 수심이 있는 곳이기에 어느 수준의 파도가 일어서 서핑할 수 있는 포인트도 많은 편이다.
일을 해결하는데 가장 하수는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폭력적인 방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으로 제압을 하는 것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문제가 생긴다. 건달 혹은 깡패 중에 의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냥 힘과 돈의 논리로만 움직일 뿐이다. 법을 생각하지 않기에 항상 불법의 경계 측에서 살아간다. 영화 강릉은 나름의 낭만적인 강릉의 시골 건달과 무슨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얻어내는 서울 깡패와의 이야기다.
결국 탐욕과 이권을 얻으려는 단순하지만 멍청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대장동의 케이스는 법조인들이 불법을 아닌척하며 포장한 그럴듯한 엘리트 깡패들이라면 강릉이라는 영화에서는 합법이라는 단어는 아예 알지 못한 채 포장도 안되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는 강릉의 지역 건달 김길석이나 최무상, 이중섭을 그를 듯한 낭만으로 포장하지만 결국 그들도 똑같은 한량들이다. 사업적이라고 하면서도 딱히 사업적인 면모도 보여주지 못한다. 말만 앞서는 놈, 형님 인척 하는 놈, 무게를 잡는 놈이 허구한 날 포장마차에서 사업 이야기를 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민석은 채권추심업체를 운영하는 깡패다. 채권추심은 합법적인 추심과 불법적인 추심이 있다. 합법적인 추심은 그나마 은행, 카드사 등에서 넘어온 채권을 받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밀려나가게 되면 불법적인 업체의 돈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때 불법적인 추심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물론 불법이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이 빠르기에 법이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런 일을 아주 야만스럽게 했던 사람이 김인석이었던 것이다.
영화 강릉은 전체적으로 누아르도 아니고 낭만적인 모습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름 낭만스럽게 살려는 건달들의 동네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깡패가 들어왔기에 결국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쉽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좋은 뒤끝은 없다. 그게 누구이든지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