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삶

고령의 배신을 모셨다는 낙산서원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는 것은 쉽지만 그걸 자신이 스스로 실행하고 그다음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 유학자들은 공자를 삶을 거울처럼 보았을까. 그 옛날 60 중반의 나이에도 뚜렷하게 이룬 것 없었지만 좌절하지도 낙담하지도 않고 학문으로 정진하며 말을 글로 옮겨 전파했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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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에 자리한 많지 않은 서원중 낙산서원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낙산서원은 인안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북쪽 산 능선에 두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꿩이 두 개의 알을 품고 있다고 하여 이란에서 인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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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근에는 고령 일대와 현풍 일대의 주민들이 왕래하던 꼬미 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건너가는 다리가 없었던 시절이다. 이곳에는 1952년에 건립한 낙산서원이 있는데 조선 중기 학자 배신(1520~1573)을 제항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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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어디에 낙산서원이 있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쯤 멀리서 고택의 모습이 보인다. 길도 잘 나있지 않은 곳이다. 꼬미 나루터에서 비롯된 꼬미 마을은 치산 대장군 꼬미 여장군 준공식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개진면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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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들어와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낙산서원이 나온다. 인내를 가지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배신은 남명 조식으로부터 수학하고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도 배웠다고 한다. 성실과 믿음의 바탕 위에 그 누구보다도 배우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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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이 남긴 작품으로 낙선집이 있는데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모른다. 그냥 오래된 재실로서의 기능만 하는 서원이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사람의 심사숙고함이 담겨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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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시작하는 것과 끝내는 것은 꾸준하게 이어가는 일관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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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습관을 오래도록 몸에 익히도록 하는 것이 참 중요한데 그 반대급부도 있다. 때론 일상적이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습관은 고독함을 동반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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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서원이 있는 인안 마을에서 조금 나오면 개진강변공원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쭉 가면 연꽃 에코파크, 잠산샛강, 개경포나루까지 다다르게 된다. 목적이 있으면서 바르게 살고 그 삶이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기준이 잘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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