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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 기념관

독립한 정신없이 독립은 없다.

독립운동가나 과거 역사의 과오를 찾는 일은 대한민국의 역사관을 바로 세우는 데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시대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숨겨지고 가려진 역사의 결을 찾을 수 있어야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충청남도에서 계룡시라는 지역은 국방도시라는 이미지로 인해 다른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지난여름 계룡시에는 의미 있는 공간이 조성이 되었다. 독립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었던 한훈의 기념관이 지난여름에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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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 기념관은 신도안면 정장리 273-2번지 일원 1222㎡ 부지에 건축면적 225.6㎡, 연면적 451.3㎡의 지하 1층~지상 1층 규모로 사업비 22여 억 원을 투입해 전시실, 사무실, 편의시설 등이 설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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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다른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도 있지만 한훈과 유응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한훈은 충남 청양 출신이며 홍주의 병으로 참여한 후 신도한으로 이주하여 나철 등과 함께 을사오적 처단을 기도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했으며 유응도는 충남 서천 출신으로 남편인 한훈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아들 세택을 홀로 키우며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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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 선생의 목표는 조국의 독립이었고 지금 우리의 목표는 조국의 통일이다. 국가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후퇴하기도 하지만 국민이 함께 할 수 있을 때 가장 큰 힘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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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의 마지막은 한국전쟁 때다. 이념의 갈등과 무력 충돌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한훈은 당시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이들에게 민족통일을 분열하는 자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극우인사로 지목되어 체포 대상에 올랐다가 1950년 9월 인민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납북당하던 중 학살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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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한훈이 사용하던 유품과 일기 수첩, 그의 행적을 알리는 다양한 기록들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은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모티브로 형상화한 외관을 구현함으로써 독립운동과 호국보훈정신을 담아서 보여주려고 공간을 구성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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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은 경성, 광주, 전주, 대전, 신의주 등 여러 형무소로 전감 중 고문 학대 끝에 단식 항쟁을 하다가 중병에 걸려서 1941년 형 집행정지로 출수하였다고 한다. 계룡의 신도안 정장리에서 신병을 치료하고 서당을 차렸는데 그러던 와중에 광복을 맞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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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안에 들어가 보라고 해서 들어가서 앉아 있었다. 정말 좁은 곳이다. 이런 곳에 한훈은 19여 년을 갇혀 있었다고 한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고스란히 감내했을 뿐만이 아니라 행동반경이 좁은 이곳에서 모든 생활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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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활동 관련 판결문도 볼 수 있다. 한훈이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판결문의 일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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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독립운동이나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많이 찾아가 보았는데 한훈은 이번에 처음 접해본 사람이었다. 그 일생의 흔적을 찾아가 보면서 독립운동의 의미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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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 기념관은 최초 2015년 독립운동 기념사업 기본계획 수립을 계기로 2016년 고택 복원사업으로 시작하였으나, 고증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는 관계로 2018년 기념관 건립으로 변경하여 2021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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