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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31. 2021

X세대

중심을 가지고 살아갈 때 기회가 있다. 

다시 대선의 계절이 오니 세대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다. MZ세대가 뭐인지도 정확하게 규정할 수가 없다. 언론이나 나름 박사나 학자라는 사람들이 규정하려고 노력하지만 헛된 노력이다. 그들의 생각대로 소비하고 행동하고 생각할까? 기술적인 변화는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가상자산이나 주식열풍, 탄소중립, 전기차, 자율주행, 플랫폼 기반 사회 등은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지 사람의 생각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한국사회의 사람들은 의미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유독 안 변하는 분야가 있다. 정치, 언론, 검찰 등이다. 이들은 어떻게 그냥 그 생각에 머물러서 사는지 때론 신기하다. 


최근 여당 후보의 자식 진학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다. 학벌 문제는 분명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선택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만들어야 만족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모든 기업에 들어갈 때 절대 대학 이름이나 졸업 연도를 적지 않고 대학 졸업, 전공학과, 중퇴 등만을 적어두고 학점만 기입하게 한다면 어떨까. 대신 어느 대학을 졸업하든 간에 논문을 쓰는 것이다. 논문을 쓰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가 없다. 논문은 대학을 기입하지 않고 이름과 개인정보만 들어간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이 자소서(여기 다도 인지할 수 있도록 쓰면 안 된다)등을 쓴다면 평가할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담긴 글과 논문뿐이다. 올해 졸업을 했던 졸업 한 지 1년, 2년이 되었든 간에 상관이 없다. 물론 일찍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은 어쩔 수는 없다. 그렇다면 좋은 학교를 가려고 서울로 가고 비싼 아파트에 살 이유가 있을까. 학군이라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 입각해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욕심이 뭉쳐서 만든 것이다. 


기회는 인생에 한 번 혹은 몇 번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나이가 되더라도 계속 주어진다면 한국의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된다. 굳이 서울과 수도권에 살 필요도 없고 기업도 인재(말 잘 듣고 적당한 학벌을 가지고 있는)를 구하기 위해 거기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더라도 무력화할 수 있는 꼼수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다. 


공중파 TV를 비롯하여 유튜브 등의 미디어에 휩쓸리지만 않으면 되지만 그게 쉬울까.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최근의 기술도 좋아한다. 마블과 DC 코믹스,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옛사람들의 이야기도 좋다. 가야금(오늘 배우가 아닌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오나라도 아닌 대장금의 오나라 가야금 악보를 발견했다. 열심히 해봐야지 하면서 글을 쓴다) 을 좋아하면서도 Becky G나 Cher Loyed 등의 가수의 노래도 엄청 좋아한다. 한국적인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서양화풍도 좋아한다. 고택이 가진 선의 아름다움을 좋아하면서도 서양의 기하학적이 느낌도 좋다. 서양의 철학이 가진 명료함을 좋아하지만 동양적인 주역의 흐름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쉽게 빠르게 익히는 편이다. 트레이닝이 되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것에 저항감이 거의 없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항상 빨리 먼저 접해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일 전 은행의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면서 뒤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를 만나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새로운 것을 익히는데 무척 어려워하는 편이었지만 그분들은 이제 없어져가는 은행 오프라인 지점으로 인해 자동화기기에 익숙해지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필자에게 도움을 청하길래 복잡한 것이 없는데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3~4번의 터치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하셨다. 잘 도와드렸지만 잠시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빠른 변화일지 모른다. 


문화에 우리는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을까.  X, Y, Z, MZ 등등 수많은 세대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때는 이러했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을까. 더 이상 생각하고 살기 싫기 때문이다. 노력은 한 번 혹은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냥 변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사람의 안이한 생각에 기반한다. 겉에 보이는 정치인이나 언론인 혹은 유튜브에 나오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걸 선택한 개개인의 선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적은 노력으로 많은 과실을 얻고 싶은 것은 같은 마음이다. 필자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생각에 자제하는 것뿐이다. 


1년에 한 달만 일해도 11개월을 여행 다니고 먹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면 어느 누가 선택하지 않을까. 사회나 가족 혹은 누군가가 강요하듯이 넣어둔 이념에서 20대나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벗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거짓으로 혹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 뻔한 것을 알면서 말하는 정치인을 믿는 사람들은 없다. 지금 국가예산이 잘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작금의 현실은 정권과 상관이 전혀 없다. 지금의 누군가가 그곳에 자리해도 똑같다. 말단에서부터 우리는 누굴 선택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스스로가 작은 노력으로 큰 과실을 얻기를 포기해야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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