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

청주 현풍 곽 씨 효자비에서 명암저수지까지.

도시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지금 시대에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그 도시를 기술해야 할 것이다. 도시는 모두 각각의 색이 있다. 프로세스로서의 도시로 보면 도시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몸소 보고 경험하고 쓰게 된다. 도시의 공간 속에 자리한 지명도 그렇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역사의 유산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찾아가다 보면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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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지어진 건물과 뒤로 막 들어서고 있는 고층의 아파트 앞으로 오래된 건물이 눈에 뜨였다. 이곳은 충청북도 청주시(淸州市) 상당구(上黨區)에 있는 법정동인 탑동으로 청주 도심부의 주거중심지역으로, 마을 주변에 명암로(明岩路)·상당로가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탑동 5층 석탑(충북 유형문화재 25호)이 있어서 탑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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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곽 씨의 본관은 문헌에 현풍·청주·선산·해미·여미·봉산 등 6본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청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현풍의 분파로서 거의 환본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현풍 곽 씨의 흔적으로 효자비는 조선 후기 4대 5인(곽여찬, 곽진은 부부, 곽원호·상조)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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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는 정ㆍ측면 한 칸의 크기로 효자비와 함께 안쪽 중앙에 현판을 달았다고 하는데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곽여찬은 효행 사실로 1817년(순조 17)에 효자로 명정 되었다. 보통 효자각이나 효자비는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유는 도심이 개발되면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심에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왕실 가문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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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친 현풍 곽 씨 문중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로 효자 관련 유물(효자각, 효자비, 정려, 현판) 및 묘소 등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한 곳에 보존되고 있어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곽진은은 곽여찬(郭汝贊)의 아들이며 곽원호는 곽진은의 아들, 곽상조는 곽형호의 아들이며 할아버지가 곽진은이라고 한다. 1884년 효자로 정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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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로 보아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을 듯 하나, 지금은 기단부가 거의 없어지고 탑신부는 1층의 몸돌과 1, 2, 3, 5층의 지붕돌만이 남아 있는 청주 탑동 오층 석탑(淸州 塔洞 五層石塔)은 조금 특이해 보이는 석탑이다. 4면에 불상을 새겼는데 동쪽은 약사여래상, 서쪽은 비로자나불상, 남쪽은 석가여래상, 북쪽은 아미타여래좌상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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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 곽 씨 판관공파 탑동 효자각[玄風郭氏 判官公波 塔洞 孝子閣]을 보고 조금 걸어가면 벚꽃길 공원이라고 명명된 공간을 보았다. 아직 봄이 아니어서 어떤 모습을 만들지에 대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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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각과 5층 석탑이 자리한 곳에서 명암저수지까지 약 1.6km 정도를 걸어오면 된다. 명암저수지는 매번 스쳐 지나가기만 한 곳이어서 그런지 멈추어 서서 보니 조금 색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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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에 보니 야경을 위해 만들어놓은 조형물들이 보인다. 2021년 어두웠던 명암저수지의 밤길을 안전하게 밝혀주는 동시에 야간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야간경관 개선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야경을 장식하는 조형물로 민들레 조명 20개소, 달·토끼 조명 18개소, 수목 투사 등 64개소, 나무 조명 3개소, 미디어폴 2개 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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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명암저수지는 1921년 농업용으로 만들었는데 주변에 논밭이 보이지 않지만 그 이후로 100여 년간 청주시는 경관이 많이 바뀌었다. 겨울밤 산책도 괜찮고 봄이 되면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공간이다. 도시의 경관은 그렇게 계속 필요에 의해 바뀌면서 도시의 얼굴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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