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여행 Part 2

최익현과 덕혜옹주

진수 : 밥 먹었으니까 슬슬 나가볼까.

수진 : 아직 못 먹은 사람 없지?

소희 : 그런데 여기 한국사람들 정말 많다. 길거리는 조용한데 말소리가 들리면 다 한국사람들이네.

진수 : 문득 생각이 든건데 19세기 중반에 왜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시대가 변했다면 받아들여야 할텐데 말야.

수진 : 그건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냐.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밥그릇하고도 연관이 되니까. 지금은 중요한 분야의 학문을 잡학이라 치부하며 살아오던 성리학자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는 그런 행동을 할리 없지.

진수 : 그렇긴 하지. 소현세자도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양문물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아버지 인조에게 진노를 산 적이 있잖아.

성현 : 중국이 중심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시대에 오랑캐들의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말그대로 상상하기도 힘든거지. 아마 주만이가 그 시대에 있었으면 제대로 대우 못받았을걸?

주만 : 왜 갑자기 내이야기야. 물리학이 얼마나 중요한 분야인지 알아? 지금 기초과학이 중요하니까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거잖아.

소희 : 그냥 그때는 그렇다고 주만아 ~ 역사적으로 보면 한반도가 일본에 침탈을 당한 것이 맞긴 한데 이는 역사적으로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이 모두 그랬던건 사실이야. 제국들은 문명화와 근대화를 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식민지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잖아.

진수 : 맞아 현대에도 보면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국가들의 주장에 평화유지같은 의미를 부여하는데 경계할 필요는 있을 듯 해.


모든 제국은 자국만은 다른 제국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 에드워드 사이드


소희 : 한적하면서도 조용한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아. 1970년대의 한국이 이랬을 것 같기도 하고.

성현 : 저기 보이는 저 신사가 대마도의 대표적 신사로 이즈하라 8번궁 신사야. 8번째 신을 모시는 신사인데 일본의 8번째 신은 전쟁의 신으로 가장 중요한 신이기도 해.

진수 :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의 신은 어디서든지 중요했던 것 같아. 그리스의 아레스, 유대인의 전쟁의 신 야훼, 중국의 치우천왕, 관우등등.. 그리고 8이라는 숫자는 청나라의 군사행정조직인 팔기군으로도 유명하잖아.


이즈하라의 팔번궁

성현 : 하쯔방궁 신사에는 마리아 신사도 같이 있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이기도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권력싸움에서 패배한 후 그의 딸이었던 마리아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거든. 이곳 대마도주와 결혼했었는데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도쿠가와 막부에 붙는 바람에...

수진 : 사람이 참 잔인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아내도 버리는 세상이라니 말이야.

진수 : 상황파악이 빠르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평할 수는 없을듯

소희 : 철학적으로 볼 때 그 대마도주는 자신의 가문과 자신을 따르는 가신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적인 정당성을 내세운다면 가능한 이야기일수도 있지 않을까? 논리에는 도덕이 없다고 하잖아..

주만 : 그런데 최익현 순국비가 있다는 곳은 얼마나 더 가야하는거야?

성현 : 금방이야. 이제 조금만 더가면 돼.

수진 : 바로 여기야. 최익현 선생의 장례가 치러졌던 대마도 수선사. 의병운동을 진두지휘하다가 항복한 뒤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이곳 대마도까지 끌려 왔다가 영양실조와 풍토병등으로 순국한 뒤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대.


최익현 선생의 장례가 치러졌던 대마도 수선사

주만 : 대마도의 집들을 보면 참 튼튼해보여. 돌로 오밀조밀하게 잘 쌓아놨단 말이지. 그런데 왜 일본은 한국 사람에게만 사과를 안하는거야? 독일사람들은 사과하고 반성하잖아.

수진 : 그건 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것과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데 독일은 연합군에게 패배를 당한거고 일본은 미국에 의해 패배를 당한거지 한국에게 패배를 당한 것이 아니잖아. 그들의 추구했던 제국주의가 지금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사과할일도 없는 거지.

주만 : 그건 자신들의 입장이고 피해를 당한 쪽은 전혀 생각도 안하는거잖아.

수진 : 난 일본을 옹호하는게 아냐..

소희 : 그래 이 주제로 이야기하면 밤을 새도 결론이 안날거야.

진수 : 나 역시 일본인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런 게 아닐까? 일본인들의 한반도 식민주의 문화는 '조선인'을 열등함과 동일시 한다. -> 식민지배를 받는 조선인들은 이 '열등한'상황을 탈피하고 싶어하고 -> 식민지배를 받는 조선인들은 일본의 모국문화의 우월성을 믿기 시작하고 -> 친일파는 더욱더 증가한다. -> 유일한 탈출구는 '조선인다움'을 거부하는 것이다. -> 조선인은 일본과 한일합방으로 인해 진보한다.

주만 :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네. 결국 힘의 논리라는 이야기잖아.

수진 :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해. 정의롭지 않더라도 국가의 이익이 대부분 우선시 되었으니까.


대한인 최익현선생 순국지비

소희 : 그런데 여기 주변에는 정말 묘지가 많다.

성현 : 그게 한국과 일본의 또 다른 특성이더라구. 한국의 경우 묘지 공원이라던가 장례와 관련된 것은 모두 혐오시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일본은 그냥 일반 주거공간 근처에 저렇게 묘지가 자리하고 있어. 산자와 죽은자가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거와 어울리는 근거리에 모두 있거든. 그리고 한국은 1년에 추석, 설날, 제초하는 날을 정해서 멀리까지 가서 성묘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미즈무케라는 바가지가 달린 손잡이 물통에 깨끗한 물을 담아 가지고 저런 곳에 가서 묘비 및 석물에 바가지로 물을 얹어 끼얹는 것으로 성묘를 하더라구.

수진 : 묘비에 물을 끼얹는 것을 하카마이리라고 부른대.

진수 : 뭐하는거야?

주만 : 일본에 왔잖아. 일본식으로 바가지에 물 담아서 끼얹을라구.

소희 : 지하에서 최익현 선생이 참 좋아하겠다. 그냥 묵념이나 하고 가자.


백제비구니가 창건했다는 수선사 본당

“신의 나이 74살이오니 죽어도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다만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원수를 갚지 못하며,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강토를 다시 찾지 못하여 4천년 화하정도가 더럽혀져도 부지하지 못하고, 삼천리 강토 선왕의 적자가 어육이 되어도 구원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신이 죽더라고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진수 : 대마도는 중립의 땅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 최익현 선생 순국비라던가 다케유키 백작과 덕혜옹주의 결혼을 기념하는 결혼 봉축비는 굳이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었을텐데 말이야. 한국관광객을 대하는 영업적인 차원이라는 그런 느낌

수진 : 대마도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일본인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훨씬 많다는 것은 사실이야.

소희 :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할라나? 한국 사람들은 굳이 의식적으로 일본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애증의 감정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보다 열등했다고 생각했던 민족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이 땅을 유린했다는 분노가 한국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거지.

성현 :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일본이 우위에 있는데 굳이 안보려고 하는 것 같긴 해.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본을 객관적으로 보기도 해야 되는데 말야.

주만 : 감성적인 것이 한국 사람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본 드라마에서 표현된 일본인들을 보면 그 내면을 알기 힘들 정도라고 할라나..A를 생각하면서 B를 말할 수 있는 그런 민족


대마도주의 후예 다케유키 백작과 덕혜옹주의 결혼을 기념하는 결혼 봉축비

성현 : 자 이제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를 보러 가자.

소희 : 그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수진이는 그런 정략적인 결혼이 좋아?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어? 나는 정략결혼은 싫지만 모든 것을 버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는 않을 것 같아.

수진 : 이미 우린 덕혜옹주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잖아? 그럼 정략결혼이 싫다고 말하는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어? 난 조선 왕실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갑갑할 것 같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잖아. 특히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라던가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의 삶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보이지는 않아.

성현 : 조선의 왕족들은 물러날 때를 놓친 것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것이 아닐까?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면서 변화를 이끌어낸 다음 상징적인 존재로 남았다면 좋았을텐데

주만 : 그게 쉽냐? 나같아도 권력을 잡고 휘두르고 싶었을텐데.

소희 : 맞아 주만이라면 충분히 그랬을거야.

주만 : 그게 무슨 의미야? 나라면 그랬다니.

소희 : 절대 권력을 놓지도 않고 반항하면 탄압했을거라구.

주만 : 아니야 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도자가 되었을거야.

수진 : 절대 그렇지 않을걸. 그 자리에 오르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 아마 주만이는 물리학을 초등교육과정에 넣을거야 그리고 대학 입학시험에 상대성 이론이 나올지도 모르지.

소희 : 생각만 해도..머리가 아프다.

주만 : 지금 상대성이론의 위대한 발견을 폄하하는거야? 그 발견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뀐지 알아?

소희 : 그걸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주만이가 그 자리에 오르면 이상해질지도 모른다는 걸 말하는거야.

주만 : 아니야 난 잘했을 거야.

수진 : 애들아 저녁 뭐먹을까?

진수 : 해산물 바비큐 어때?

소희 : 괜찮지.

주만 :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1912년에 태어난 덕혜옹주는 13살 때 일본에 의해 반강제로 일본 본토로 보내진다. 영친왕과 정략적인 결혼을 해야 했던 일본 왕족 이방자 여사처럼 덕혜옹주 역시 일본인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된다. 해방 이후인 1953년 다케유키에 의해 강제 이혼당하지만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1962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 1989년 4월 임종할때까지 궁궐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했다. 평생을 신경쇠약 증세와 정신적인 문제로 괴로워하며 살던 그녀는 조선왕족의 마지막 운명 그자체라고 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대마도 여행 Par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