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깊이를 더하다
주만 : 드디어 한옥에서 처음 1박2일이네. 그냥 둘러 볼때는 좋았지만 느낌상 불편할 것 같은데...풀빌라 팬션 얼마나 좋아.
수진 : 또 투덜댄다. 현대식 숙박도 좋긴 하지만 한옥에 대해서 알면 너도 좋아할걸? 그리고 이번이 처음 1박2일이잖아. 역사로 이야기하는 인문학 모임(역인모) 첫 숙박이기도 하고. 이곳에는 자연도 있고 사람이 있으며 철학이 있는 곳이야.
주만 : 철학하면 무언가 의미 없는 학문같어. 고민한다고 뭐가 나오나?
소희 : 아 그랬어~~ 주만이가 그랬구나. 난 몰랐네~
주만 : 언제 온거야.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철학이 없다면 삶의 의미가 없을것 같어.
소희 : 주만이가 좋아하는 물리학이나 물리적 활동에서 기쁨과 열정을 얻을 수 있지만 사회, 역사, 학문, 종교등에서 우리는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거야. 그래서 사람은 신념과 사상을 바로 세우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지.
주만 : 무언가 어려워. 딱 숫자로 표현되는 것도 아니고.
진수 : 애들아 짐 좀 들고가지. 무거워 죽겠네. 여기가 방기옥 고택이구나. 생각보다 크네.
성현 : 봐봐. 주만아 한옥에 들어서서 앉아보기도 하고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보면 사람 중심으로 집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주만 : 그래 그래 무척 편하다.
수진 : 지난번 홍성의 엄찬 고택에서 보듯이 지형의 차이를 그대로 이용해서 짓는 것이 한옥의 특징이야. 방기옥 고택은 위쪽 공간이 평평하게 넓으니까 그곳까지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고 대문을 만들었잖아.
주만 : 아무튼 배고프지 않아? 밥이나 우선 먹자.
수진 :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에게 특별히 부탁했거든. 너도 좋아할껄?
주인 : 어서오세요. 점심식사 안하셨죠? 대청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소희 : 와~ 정말 맛나보여요. 이건 뭐에요? 조금 특이한 것 같은데요.
주인 : 역시 귀한 음식을 먼저 알아보네요. 그건 물수란이라고 하는데요. 해산물하고 채소, 잣을 갈아 만든 국물이 어우러진 음식이에요. 손이 조금 많이 가긴 하지만 맛이 좋아요.
소희 : 애들아 빨리 와 짐정리는 있다가 하고 우선 식사하자.
진수 : 그냥 얼핏보던 한정식이 아니네요.
주만 : 오~~ 난 이런걸 기다렸던거야.
성현 : 맛있게 먹겠습니다.
수진 : 감사해요. 이렇게 까지 신경 안써주셔도 되는데
소희 : 난 우선 물수란부터 먹어봐야지. 흠~~ 해물의 쫄깃함이 씹을수록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소스와 궁합이 정말 좋은데? 그리고 잣국물 때문인지 되게 고소하고 채소의 향긋한 향이 코로 들어오는것 같아.
진수 : 주만이봐 숨도 안쉬고 먹는다.
주만 : 맛있는데. 난 고기가 제일 맛있긴 한데 이 음식들도 좋네. 그런데 이 밥은 뭐에요?
주인 : 아 그건 야생팥으로 만든 팥밥이에요.
성현 : 팥으로 팥죽이 아니라 팥밥도 해먹어요? 신기하네
수진 : 밥이 더 쫀득한 느낌이에요. 작은 팥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밥맛이 무언가 야생의 느낌도 나지만 무언가 부드러운 그런 촉감이 좋아요.
진수 : 우리가 싸온 돼지 목살이 서운해하겠다. 저녁 음식이 죽겠네.
주만 : 이거 맛있다. 이거 뭐에요? 삼겹살 같기도 한데.
주인 : 그건 삼겹살차슈라고 하는건데 여기서 직접 만든 숙성소스로 만든 걸로 집에서 직접 담근 간장으로 4~5시간정도 숙성해서 구워낸거에요.
소희 : 겉은 바삭한 것 같은데 속은 잘 익었네요. 달달한 것 같지만 살짝 짠듯한 느낌이 드는데 짜다기보다는 간장에서 우러난 깊은 맛이네요.
진수 : 오이 동치미, 고기전, 나물 반찬이 모두 맛있어요. 수진아 뭐라고 했기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신 거야.
수진 : 아니 그냥 역사를 찾아다니는 대학원생 소모임라고 했어. 별다른 말은 안했는데
주인 : 그냥 요즘 젊은이들이 한옥이니 고택이나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어 하는데 이런 때에 관심을 보여주는 학생들이 있다고 해서 아주 조금 신경을 썼을뿐이에요.
진수 : 이런 좋은 음식에 술이 빠지면 안되겠지? 지난번에 갔다가 맛있게 먹은 적이 있어서 가져와봤어. 면천두견주라고...
수진 : 고려의 개국공신. 면천복씨(沔川卜氏)의 시조로 초명은 사괴(砂瑰) 또는 사귀(沙貴)인 복지겸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딸 영랑이 신령의 계시대로 진달래꽃술을 빚어 복지겸의 병을 고쳤다고 알려진 술? 알지..
성현 : 시중에서 사기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구했네.
소희 : 진달래꽃으로 빚었다고 하더니 색깔이 살짝 엷은 담황색이네. 마셔볼까? 입안을 휘감는 느낌에 단맛이 강한 술이네. 여자들이 좋아하겠다.
성현 : 다 먹었으면 이 시원한 대청마루에서 아까하던 이야기나 하자.
주만 : 좀 쉬었다 하자. 이 주변도 한번 돌아보고 말이야.
수진 : 그래 조금 더 쉬자. 소희야 주변이나 한번 돌아볼래?
소희 : 여긴 고택치고는 꽤 넓은 것 같어.
수진 : 원래 중부지방은 이 고택처럼 'ㅁ'자형 배치가 많지는 않아. 겨울에 추운 북부지방에서 열 손실이 줄어들게 하기 위해 실내에 배치하거든. 보통 중부지방은 'ㄴ'자형이 많아. 그런데 그 이상은 나도 잘 몰라. 역사에 대해서나 알지 한옥이나 주택은 나도 잘 모르거든.
소희 : 여기도 장독이 많네.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하나로도 부족해서 더 구입하는 집도 많더라구. 그래서 책에서나 장독대를 보곤 했는데 너희들과 돌아다니다보니 이제는 장독들이 익숙해졌어.
수진 : 요즘은 장독을 만드는 곳도 거의 없어서 구하기도 힘들다고 하더라구.
장독 :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등을 담그거나 담아 두는 독으로 철분이 많은 적색점토를 주요 원료로 사용하여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옹기는 견고하면서도 숨을 쉬는 통기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적인 방부성을 가지고 있어 음식물을 자연발효 시켜준다.
성현 : 진수야 한옥들 보면 못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수직, 수평, 사선을 잘 맞추는 것을 보면 대단하지 않냐?
진수 : 맞아 건축적으로 보더라도 나무와 철의 팽창과 수축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많이 사용할 수록 오랫동안 유지되기가 힘들어. 콘크리트 같은 경우 내구성이 좋고 압축강도가 우수하긴 하지만 오랜시간이 지나면 목재로 만든 건물보다 더 수명이 짦기도 하거든. 요즘 짓는 통나무 주택은 한옥에 비하면 그냥 대충 지은거나 다름없지.
성현 : 보통 큰 고택을 제외하고 마당이라고 부를 정도의 공간은 하나 정도인데 이곳은 바깥마당과 안마당이라고 부를 정도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주만 : 여기는 왜 마루를 두 개로 나누어 놓았대?
성현 : 이곳 안채에 연결된 것은 안대청이고 저곳은 사랑채 역할을 하니 사랑대청이라고 볼 수 있어 여기는 누마루가 없어서 그렇지 누마루만 있으면 완벽할텐데 말이야.
주만 : 누마루? 그게 먼데?
성현 : 아마 주만이도 기억할걸? 논산에 있는 명재고택이라고...그곳에 가면 좌측에 기단 없이 기둥위에 설치된 형태로 다락처럼 높게 만들어 통풍이 잘되도록 만든 것을 누마루라고 그래. 여기 사랑대청처럼 여름에는 문을 걸어 올려 시원하게 주변 경치도 감상할 수 있어.
주만 : 아 기억 나는 것 같아.
소희 : 헤이 남자들끼리 이야기좀 나눴어?
진수 : 머 그냥 한옥의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
수진 : 무슨 구조?
성현 : 아~ 마루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이야.
소희 : 난 한옥에 마루가 있는 것이 참 좋더라.
성현 : 이곳은 툇마루는 우물마루 짜듯이 짠 것이 아니라 다르게 짰네. 머 비슷하기는 하지만.
수진 : 그래? 그게 먼데
진수 : 아 보통 짦은 널을 가로로 긴 널을 세로로 놓아서 우물 정자모양으로 짠것이 우물마루야. 한국의 경우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가 뚜렷해서 수축과 팽창이 일어나니까 이런 한국기후에 적당하거든.
주만 : 그래서 무늬결보다는 곧은결 판재를 많이 사용하는 거잖아. 목재에 따라 다르겠지만 곧은결은 0.7% ~1%, 무늬결은 1.8% ~ 2%까지 일어난대. 잘 건조된 목재기준으로...
소희 : 그 수치가 얼마나 많은 차이를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만이의 지식도 가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주만 : 그런 섭섭한 말을...많은 도움이 되지.
진수 : 한옥을 보면 다목적으로 설계된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예를 들면 창문은 조망과 채광, 통풍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잖아.
주만 : 그런데 봄, 여름, 가을은 그럭저럭 있을만하지만 솔직히 겨울에는 춥잖아.
성현 : 그건 풍수적 관점에서 일조와 조망을 모두 고려해서 지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커버가 된 것도 사실이야. 공간 활용을 통한 단열도 어느 정도 반영했었으니까.
주만 : 단열제로 가장 좋은 것은 뭐니뭐니 해도 공기야. 그래서 단열재로 중간에 공간을 넣잖아. 저렴한 건축비 덕분에 일반 빌라는 힘들지만 조금만 고려하면 단열성이 좋은집이 돼지.
수진 : 공기가 가장 좋은 단열제라고?
주만 : 응 열은 분자 간의 거리가 짧을수록 빨리 전달되는데 고체는 분자 간의 거리가 짦고 기체는 멀거든. 즉 벽 안에 단열제를 넣는 것은 '공기를 움직이지 않게 하여 대류하지 않는 층을 만들기 위해서'야. 즉 흔히 많이 아는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같은 것은 발포제 단열제 역시 공기를 구속한다고 봐야지.
진수 : 맞아 그건 주만이 말대로야. 빌라를 저렴하게 건축하기 위해 벽 바깥쪽에 통기층을 만들지않고 단열하면 벽 안쪽에 곰팡이가 생기는 건물이 되어버리거든. 그건 그렇고 목조로 만들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던 간에 장단점이 있다는거...
소희 : 주제를 바꾸어서 너희들은 주 40시간 근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유럽은 35시간 근무도 있다는데.
주만 : 난 일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별로 불만 없어. 일하고 싶으면 더 일하는거지. 돈만 많이 받으면 돼.
수진 : 난 의미없이 야근하고 월화수목금금금 하는 그런 일자리는 싫어.
진수 : 삶의 질을 위해서는 시간이 여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그래야 이런 곳도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
소희 : 버트런드 러셀은 풍요롭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줄여 우리가 더 많은 자유를 얻어야 된다고 말했어.
성현 : 그게 쉽게 바뀔 수 있을까. 한국은 주당 근무시간이나 일의 종류에 따른 보상체계를 당연시하고 있잖아. 소희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 한마디로 빈둥거리면서 쉬는 시간의 가치도 충분히 중요하다라는 말같은데?
소희 : 맞아 앞만 보면서 열심히 뛰었는데 불구하고 모두가 행복하지도 않잖아.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 같 긴한데 무언가 부족해. 그게 뭘까?
수진 :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으니 인문학에서 그 답을 묻고 있는 거 아닐까?
행복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데 있다. - 버트런드 러셀
진수 : 그렇다면 미래에 유명한 사업중에 하나는 아마 즐거움을 찾아주는 사업이 될거야.
주만 : 철학적인데. 난 계산은 참 잘하는데 이런 답이 안나오는 문제는 힘들단 말이야.
소희 : 괜찮아 주만아 그게 너 다운거야.
성현 : 그래 그 사람만의 색깔이 있다는 건 안좋은게 아냐.
주만 : 어째 그런 의미가 아닌것 같은데...
소희 : 지금 충분히 자동화되었고 시스템은 진화되었는데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더 바빠지고 있어. 러셀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삶은 어리석다라고 말하고 있어. 계속해서 이렇게 어리석어야 되는 이유는 없다고..
진수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남자들은 저 방에서 자면 돼. 일찍 자고 내일 못한 이야기나 더하자.
수진 : 그래 다들 잘자고. 낼봐.
주만 : 나는 저 방에 가서 자면 안될까?
소희 : 대답할 가치가 없다. 그냥 마루에서 자!
수진 : 애들아 일어나서 씻고 밥먹어. 아니 국수먹어
진수 : 무슨 국수?
소희 : 호박국수라고 들어봤어?
주만 : 호박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다고?
소희 : 한국에 알려진 것은 얼마 안되었는데 일본에서 건너온 음식이야. 국수호박가지고 만드는 방법이지. 먹어봐 맛도 괜찮아.
성현 : 호박속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소희 : 국수호박을 끓는 물에 삶으면 호박 속이 국수 면발처럼 변하는 특성을 이용한거야.
진수 : 담백한 것 같으면서도 씹는 느낌도 괜찮네. 이거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어도 맛있겠다.
수진 : 사장님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사장 : 맛있게 먹었다면 저야 감사하죠.
주만 : 정말 괜찮았어요. 근데 소희는 호박국수를 어떻게 알아?
소희 : 아~ 전에 심야극장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봤거든 그래서 찾아본 적이 있어.
진수 : 정말 시간 빨리 지나간다. 이제 정리해서 나가야 되겠네.
소희 : 그러게..진수는 건축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진수 : 난 한옥같이 자연순응형 설계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억지스럽지 않은 것 말야.
주만 : 그럼 지금 짓는 것은 모두 억지스럽다는 이야기야?
성현 :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 흑백논리도 아니고...
진수 : 자연 순응형 설계는 지금도 많이 활용되고 있어. 즉 인공 조명, 기계를 이용한 환기, 인공온도 조절등에 덜 의존하는거야. 너희들도 잘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건축물의 방향을 태양쪽으로 향하게 하는 남향설계라던가 공기의 흐름을 이용한 온도 조절, 단열 유리, 통기, 태양열 설계 모든 것이 자연 순응형 설계야.
주만 : 아~ 옛사람들이 원래 알고 있던 것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거네.
성현 : 짐 옮기기 편하게 차 좀 이쪽으로 가져와 주만아.
주만 : 알았어.
소희 : 사장님 편하게 잘있고 맛있는 음식도 잘 먹고 갑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수진 : 감사했어요.
진수 : 안녕히계세요.
주인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대화를 하나 생각할 정도로 저야말로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성현 : 그런데 저 나무는 정말 오래된 것 같아.
수진 : 500년은 넘었겠는걸? 오래된 고목은 마을에서 제사도 지낸다는데...
한옥 : 한옥은 자연순응형 설계를 일찍이 적용한 주거공간으로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속에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집이다. 대칭을 중요시한 서양의 건물과 달리 한옥은 비대칭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속에 질서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한옥은 사랑채, 안채, 정자, 광, 부엌, 마당이 있으며 마당에는 小자연을 담아놓았다.
Chapter 1. 고택에서 삶의 공간을 찾다
마지막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