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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7. 2022

음모자

당신이 내린 판단은 과연 숙고했던 것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옳다고 생각되게 만드는 언론이나 가까운 사람 혹은 사실을 말하는 척하는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 있는 사건이나 일들을 가볍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언급하기 위해서는 직접 보고 듣고, 읽고 판단한 다음에야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쉽게 흔들 수가 있다. 생각하기 싫은데 믿고 싶은 것은 있고 믿고 싶은 것을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냥 휩쓸리면 된다. 이런 사람들은 사기당하기에 참 좋은 대상이다. 


영화 음모자는 개봉한 지 오래되었지만 요즘에 보면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음모자는 있지만 그 음모는 불이 휩쓸고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잊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인권을 부르짖었던 링컨 대통령의 피살이다. 닷새 전 남부의 리 장군이 북부의 그랜트 장군에게 투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팽팽했던 긴장의 끈을 놓고 극장에서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경호원이 없는 대통령 전용석에 잠입한 존 윌크스 부스라는 유명한 배우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언론인이 필요하지만 상당수가 진실을 전하지는 않는다. 필요해 보이는 정보를 각색해서 전달하는 기자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언론인의 자격이 없지만 언론인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일명 노예 전쟁이라는 미국의 독립전쟁은 당시의 미국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복잡한 이권에 의해 벌어진 전쟁이었다. 당시 미 대륙에 건너간 사람들은 신대륙이라는 미명 아래 무언가 기회를 잡으려는 가난한 빈민이 대부분이었다. 남부는 노예를 착취해서 커다란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북부는 노동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전까지 미국은 하나 된 미국이 아니라 각각의 주가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운영되던 나라였다. 남북전쟁 이후에 비로소 지금의 미국으로 탄생한 것이다.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다. 4년간에 걸친 전쟁으로 미국은 300만 명이 전쟁에 참전하고 60만 명이 전사했다. 노예 제도는 지금의 최저임금제나 외국인 노동자 고용과 묘하게 닮아 있다. 기업은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하고 이제 노동소득으로 자본소득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소득의 구조적인 문제는 문정부 이전 2,000년부터 이미 가속화된 것이다. 

진보론자도 혹은 보수주의자도 역시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한쪽에서 볼 때 다른 쪽은 불의이고 다른 쪽에서 볼 때 이쪽 역시 불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넘어서는 정의라는 잣대는 있어야 한다. 음모자는 바로 그런 정의를 말하고 있다. 링컨 암살범 중 유일한 여자 메리 서랏은 암살에 공모했다는 이유로 군사법정에 세워진다. 전시 중에는 법은 침묵한다라는 명언 속에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북군의 전쟁영웅 프레데릭 에이컨이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나섰지만 그의 힘으로 음모를 믿는 사람들의 그 믿음은 이겨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헌법에서 말하는 인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한 방향으로 몰아가면 그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맞닥트리게 된다. 인권이라던가 무죄 여부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메리 서랏은 결국 교수대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메리 서랏을 변호하는 프레데릭 에이컨을 내부고발자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정당한 재판 따위는 필요 없고 무죄에 대한 의심 불합리한 재판 과정, 협박, 위증 이런 것은 북부와 남부의 하나 된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이 감추어져야만 하는 희생에 불과하다. 바람직한 신념이라는 것은 정말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수 있으면서 다양한 지식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져야 가능하다. 가장 두려운 사람이 지식도 없고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는 사람이면서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2022년 현재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속에서 정답은 규정지어질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하려고 하는데 그 속에서 왜곡이 발생한다. 정말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양심은 자신의 이익 앞에서 침묵할 뿐이라면 그 세상은 그 누구도 행복이라는 가치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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