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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31. 2016

오드리 헵번의 사랑

사진전에서 만난 오드리 헵번

모든 사람의 인생은 소중하지만 그 인생을 오롯이 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리만족으로 배우들의 삶을 다시 조명해보곤 한다.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28일까지 천안에 위치한 천안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는 오드리 헵번을 주제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사후에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수많은 여배우 중 오드리 헵번은 스타로서 확실한 이미지를 굳히기도 했지만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족적 때문에 더욱더 숭고해 보인다. 


천안예술의 전당 미술관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종합휴양지로 185

- Tel 1566-0155

- 오드리 헵번 사진전 : 숭고한 사랑

- Exhibition;; Majestic love

- 07.12 ~ 08.28

오드리 헵번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0여 년 정도가 지난 1929년에 태어난다. 오드리 헵번은 영국인 은행가인 아버지와 네덜란드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부모의 이혼 후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녀가 거주했던 곳 역시 2차 세계대전의 화마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녀가 발레를 배우면서 거주했던 네덜란드 동부 헬데틀란트 주의 주도인 아른험은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점령이 된다. 아른험은 1944년 9월 영국과 폴란드의 공수부대가 라인 강의 다리들을 지키기 위해  독일과 싸운 일명 아른험 전쟁이 있었으나 실패로 끝이 났다. 

오드리 헵번은 7교시로 데뷔하고 젊은 아내들의 이야기 등에 출연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갑자기 급부상했다. 그 영화로 1954년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와 같이 영화를 찍은 그레고리 펙은 이 영화를 계기로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드리 헵번을 응원해주고 아껴주는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행복하고 우아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오드리 헵번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앞서 어린 시절은 독일 점령지역에 살았던 그녀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직접 겪어보았다. 그때의 경험으로 오드리 헵번은 전쟁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갔지만 세상의 그 어떤 물질적인 것도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결혼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다.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은 12살 연상 멜 퍼러 감독과 두 번째 결혼은 9살 연하 안드레아 도티와 했지만 두 번다 남자의 외도로 이혼하게 된다. 

미술관 안에서는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피플에서 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던 그녀는 생애 31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오드리 헵번이 전 세계인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게 된 이유에는 다른 여배우들과의 차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대부분 섹시 심벌로 자리 잡으면서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녔지만 그녀는 귀족 출신다운 기품이 있었다. 다른 여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우아함이 있었고 사랑스러웠다. 

검정과 흰색이 잘 어울리는 배우 오드리 헵번의 패션은 햅번 스타일로 남을 만큼 여성들의 워너비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오드리 헵번이 자주 했던 시그니처 헤어와 다양한 스타일의 모자, 블랙 엔 화이트가 잘 어울리는 여자 오드리 헵번의 블랙 터틀넥을 입은 저 사진은 그녀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을 너무나 잘 아는 여성이었다. 

오드리 헵번은 후대 사람들이 간직할만한 수많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For lovely eyes, seek out the good in people.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보아라.


People, more than things, have to be restored, renewed, revived, reclaimed, and redeemed.

물건들보다 사람이 상처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며, 새로워져야 하고, 소생되어야 하며, 갱생되고 구원받아야 한다.


The beauty of a woman is not in the clothes she wears, the figure that she carries, or the way she combs her hair.

여자의 아름다움은 그녀가 입는 옷이나, 가진 생김새, 또는 머리를 빗는 방법에 있지 않다.


True beauty in a woman is reflected in her sould.

여성 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녀의 영혼 안에서 반영된다.

오드리 헵번의 순백색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다. 남녀평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신데렐라의 꿈을 그리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1964년 오드리 헵번은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영화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담고 있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브로드 웨이에서만 7년 동안 공연된 작품으로  오드리 헵번에 의해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변신한다. 남루한 코트를 입고 있었던 일라이자 두리가 아름다운 드레스, 보석, 장갑으로 치장하고 사계교의 꽃으로 거듭 다는 스토리는 모든 여성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오드리 헵번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바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원래는 최고의 섹시 심벌이었던 마럴린 먼로에게 돌아갈 작품이었으나 제작과 관련된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생각했을 때 오드리 헵번이 제격이라면서 그녀를 출연시켰다. 맨해튼 동쪽 70번지 에 사는 20세의 플레이걸 홀리 골라이틀리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자였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그녀는 하류층이지만 신분상승을 바라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와 베이글 빵을 들고 보석상 티파니 앞에서 윈도 쇼핑을 하는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유효하고 미래에도 유효할 그런 여성들의 모습이다.  

지금도 수많은 여배우들이 오드리 헵번의 겉모습을 따라 하지만 내면의 기품을 대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매력은 내면에서 우러나기 때문이다.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단 한 편의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올리비아 핫세, 전설적인 섹시 심벌 마럴린 먼로,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모두 매력 있지만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 없었던 배우는 오드리 헵번뿐이다. 

오드리 헵번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했던 어빙 고프먼이라는 심리학자는 '삶이란 극적으로 연기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과 무대나 스크린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가 어떻게 비슷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걸맞은 인물이 되는 것과는 별개이다. 대중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만한 위치에 있었던 오드리 헵번은 그에 걸맞은 태도와 자세를 보여주었다. 

오드리 헵번이 스스로 유니세프를 찾아가서 보여주었던 행동을 처음에는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인기가 떨어진 배우가 주목받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손을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 오드리 헵번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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