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와 대화해보는 다산 정약용 박물관
큰 지식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작은 지식은 사소한 것조차 하나씩 또박또박 따진다. 큰 말은 기세가 남을 짓누르는 듯하고, 작은 말은 수다스럽다. 참된 변화를 알고 자신의 마음을 잘 판단하는 지혜로운 사람만이 기준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도 기준을 가질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강진에 있다. 다산은 그곳에서 머물면서 자신의 길을 걸었고 기록을 남겼다.
강진에 다산 정약용 박물관은 처음 방문해보는 곳이다. 그의 생각과 일생, 그가 쓴 서적과 그의 찻잔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차를 좋아하는 탓인지 몰라도 차와 관련한 다산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보는 편이다.
그곳의 삶과 현실을 알기 위해서는 겉으로 잠시 들려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 머물고 살면서 사람들과의 삶을 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정약용은 호는 사암, 여유당이며 그는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신유사옥 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
그는 유배생활에서 지방 정치의 부패와 봉건 지배층의 횡포를 몸소 체험하여 사회적 모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1808년 봄부터 머무른 강진의 다산초당은 바로 다산학의 산실이었다. 1818년 이태순(李泰淳)의 상소로 유배에서 풀렸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구하며 살았다.
그의 관점은 삶을 관통하였다. 특히 그는 기질에 따른 인간성의 차등설을 비판하고 우수한 능력자는 특정 신분이나 가문, 지역 등에서 배출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정약용의 삶을 보면 정조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그의 관직생활 중 이룬 것들은 정조대에 이룬 것이며 유배생활에서는 실생활에서 본 것을 기록과 서적으로 남겼다.
다산 정약용은 하늘이 내리는 왕의 자리는 한 사람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바뀌어 항상 덕이 많은 사람에게 옮겨진다고 말하면서, 덕의 유무는 민심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므로 왕의 근원은 결국 민의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약용은 평생 차를 즐겨 마셨다. 차라고 하는 것은 술과 달리 고요하게 물속의 구슬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월출산 남쪽 능선에 옥판봉이라는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으며, 다산이 이 봉우리에 다녀온 후, “옥판봉에 다녀왔는데 아름다운 경치는 기억에 없고, 아슬아슬한 절벽이라 죽다 살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처음에는 진실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항상 거짓으로 끝나며 시작할 때는 간단했던 일이 끝날 무렵 반드시 거창 해지며 말이라는 것은 바람이나 물결과 같으니, 말이 전해질 때는 반드시 더해지고 빠지는 것이 있다. 바람이나 물결은 쉽게 요동치기에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다산은 전통적 관념론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론적 세계관을 지향했는데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은 구체적인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개발로 연결되어 농기계, 관개수리시설 및 도량형기를 발명하고 정비했다. 한강의 배다리(舟橋)를 설계하고, 수원성의 축조 시 거중기·고륜(鼓輪)·활차(滑車) 등의 건설기계는 그런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스마트 박물관 구축 지원 사업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전시‧교육‧전시안내 시스템 구축 등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다산 박물관은 AR(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전시 안내 시스템과 함께 다산정신 온라인 비대면 원격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계획 중이며 올해 연말 사업을 완료하고 관람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