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후 최치원 선생 유적지
사람이 지금까지 저지른 허물은 각각 사람의 유형을 보여준다. 그 허물은 습관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인간 유형인지 밝혀진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실수가 계속 반복이 되면 그냥 그 사람 자체가 되어버린다. 어느 순간에는 그 모습을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은 안 바뀌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 대해 혹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다. 매일매일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내면 속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과 그 올바름과 그름을 계속 돌아보게 된다. 그건 능력이 있던 능력이 없든 간에 모두에게 유용한 방법이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근거 없이 희망적으로 생각하던가 하던 대로 살아가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이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옛사람의 흔적을 찾고 그 사람이 걸어갔던 길과 남아 있는 글을 읽어보는 것은 마치 사람의 미래를 조금 엿볼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이곳은 홍성에 자리한 문창후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다. 그의 삶은 기록하고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는 글의 힘이 있었다. 유적지라고는 하지만 돌이 놓여 있고 그 의미를 설명한 것 외에는 별다른 시설이나 공간은 없다.
안다는 것은 그냥 아는 체를 하는 것에 불과하고 많은 것을 들으며 돌아다니고 그 가운데서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해서 거기에 따르며 많은 것을 보며 돌아다니며 기억하는 것은 공부를 한 것이다. 상서라는 것은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린다는 말이다. 신라 말에 글을 올린 사람은 천재의 고뇌로 세상을 살았던 문장가 고운 최치원이다.
이렇게 돌에다가 글을 쓰는 것을 금석문이라고 한다. 그의 문사(文詞)는 아름답게 다듬고 형식미가 정제된 솜씨는 천하일품이었고 종횡무진했으며 그는 글을 사랑하는 우리 선비의 시원이었고 사표가 되었던 사람이다.
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지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걸어온 시간에 비하면 한없이 길고 무한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말과 글이 후대에 전해지기를 원하면서 최치원은 글을 남겼을까.
그의 글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일 수 있다. 고운 벨트라고 결성된 곳만 부산 해운대를 비롯하여 함양, 합천, 문경, 서산, 군산, 창원 등 10개 시군구에 달하여 빠진 곳만 해도 홍성, 보령 등에도 그의 흔적이 있다. 시대를 잘 못 만난 비운의 천재라고 하지만 그는 살아생전에 나이를 초월하여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