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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의 삶

나주 영산포에서 홍어처럼 살아간 나

삭힌 홍어의 냄새를 맡으면서 살아온 것도 40년이 넘어간다. 어떤 이들은 전라도를 홍어라고 비하시켜서 표현하기도 하는데 홍어는 나의 삶이며 전부였다. 홍어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홍어에 맛을 들이다 보면 홍어와 막걸리를 떼놓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주라는 도시를 말할 때는 영산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영산포, 제창포, 고막포, 나루터만 하더라도 선암진, 광탄진, 금강진, 제포진, 사호진, 몽탄진이 있었던 젓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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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의 삶이 어떤 것일까. 나주에서 태어나서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왔다. 가장 많이 걸어가는 길이 바로 이곳이다. 일본인의 지주 가옥이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나주지역에서 가장 큰 지주였던 쿠로즈미 이타로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살고 있는 곳이 조그마한 빌라의 삶이라도 이곳은 누구라도 돌아볼 수 있다. 이런 넓은 마당을 가진 집을 꿈꾸지만 언제 가지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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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일본인 지주 가옥을 보면 일본이 이런 느낌이겠구나라는 상상은 해볼 수 있다. 돈 많던 그 지주가 일본에서 직접 목재와 기와 등 건축자재를 들여와 건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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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흑산도 출신이어서 흑산도가 낮설지 많은 않다. 영산강이 흘러가는 곳의 영산포라는 지명은 흑산도에 설치되었던 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흑산도가 영산현이었기 때문에 영산창이라는 조창이 이곳에 있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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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아들이 이곳에서 촬영될 때 학생이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가끔씩 생각난다. 장군의 아들은 아니어도 어부의 아들쯤 되는 나는 가끔 고향 친구와 홍어와 막걸리를 사서 영산강에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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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홍어거리도 있다. 홍어는 흑산도 주민들이 오면서 이곳에서 정착하게 된 음식이다. 고려말에 왜구가 극성을 부릴 때 흑산도에 사는 주민들을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그때 이주해온 흑산도 주민이 가져온 홍어가 뱃길을 따라오다가 자연스럽게 삭히면서 오늘날의 홍어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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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배달일도 하는데 마치 이 집이 내 집인양 머물러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도 한다. 나주에는 이런 특이한 집들이 여러 채가 남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열리지 못했던 홍어와 젓갈축제도 올해 다시 열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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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이 나주를 흘러가는 영산강이다. 고깃배가 이곳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금광토굴이 있었는데 토굴의 전체가 50km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의 산지이기도 하다. 내가 일하는 곳이 바로 젓갈을 만드는 곳이다. 그곳에 있으면 황석어젓의 냄새가 몸에 자연스럽게 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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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올래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황포돛배는 한 번도 타보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주로 황포돛배를 타고 이곳을 돌아본다. 매일 보는 나주의 일상이라서 그런지 별로 새로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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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은 다른 지역의 강과 달리 달의 영향을 받아 조수의 차가 가장 크다. 뱃길이 발달하였던 곳인데 고려시대부터 영산포에 조창이 설치되어 물산이 모이고 뱃길을 따라 서울까지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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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에는 강에서 보통 보지 못한다는 등대가 있다. 강에 등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새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이 있듯이 삶에도 일류, 이류, 삼류의 삶으로 나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익혀진 홍어처럼 사람도 톡 쏘는 그런 매력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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