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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9. 2016

블러드 온 스노우

보스의 여자를 죽여야 하는 남자

이 소설은 그리 복잡한 플롯도 아니고 읽기가 편해서 아주 쉽게 읽힌다. 내용도 그렇게 생각할만한 것이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서 부담도 없다. 요 네스뵈라는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해봤는데 솔직히 내 스타일 같지는 않다.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뮤지션이며 저널리스트이며 경제학자라고 한다. 역시 외국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하는 모양인가 보다. 


블러드 오브 스노우에서 주인공은  감정이 없는 킬러이면서 묘하게 정에 굶주린 사내다.


이 남자가 가장 잘 못하는 네 가지 분야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도주 차량 운전하기

두 번째. 난 은행털이에도 쓸모가 없다

세 번째. 마약 사업에 영 쓸모가 없다

네 번째. 매매춘에 재능이 없다. 


그냥 수학도 못하고 돈 계산조차 못하는 둔한 머리로 잘하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보스 호프만이 시키는 사람 죽이는 일을 잘할 뿐이다. 위험을 느끼는 센서는 있지만 여자 앞에만 가면 모든 센서가 망가지는 킬러다. 여자를 위한다는 마초 같은 남자는 가장 치명적인 독을 가진 여자를 구분하지 못할뿐더러 암사마귀에 머리를 먹히는 수사마귀처럼 천천히 죽어간다. 


삶이 죽음과 직면해 있지만 잘 살아오던 남자는 자신의 보스에게 꽤 괜찮은 보수의 일을 받는데 바로 자신의 아내인 코리나를 죽이는 일이다. 예상했겠지만 남자는 여자를 구한다. 그리고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뻔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남자는 코리나와 행복한 미래를 아주 조금 생각해본다. 


"그녀는 내 가슴에 볼을 댔고 나는 그녀를, 내 몸 위에서 굽이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올라브?"

"네?"

"우리 그냥 영원히 이렇게 살면 안되요?"


나는 그보다 더 좋은 대답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자신과 여자를 죽일 킬러를 보스가 부를 것이라는 아주 당연한 수순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해피하게 같이 떠나기로 마음 먹지만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오늘 잠자고 내일이 오는 것 외에 없다는 옛말처럼 올라브의 인생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올라브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꿈도 있다. 돈에 대한 관념도 미래에 대한 목표도 없었던 남자는 결국 짜 놓은 판에서 말처럼 열심히 달리다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인생 막장에 이른다.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아요. 마리아, 딱 두 가지만 알죠. 하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난 삶과 의미를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망쳐놓은 부류니까요. 내가 아는 두 번째 사실은 이겁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마리아. 그래서 그때 저녁 식사에 가지 않는 거예요. 올라브"


불신보다 더한 외로움이 어디 있을까? - T.S.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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