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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3. 2016

공허한 십자가

사형은 무력(無力) 하다. 

새벽에 일어나 돌아가기 시작한 전두엽의 엔진을 제어하지 못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벽에 선택한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라는 소설이다. 2시간 만에 440여 페이지를 읽어 내려갔다. 살인자에게 딸을 읽고 이혼한 사요코와 나카하라의 이야기이다. 8살에 불과한 딸을 가석방중인 남자에게 살해가 되었다. 이들 부부는 딸을 잃고 나서 우선적으로 히루카 와라는 범인의 사형에 모든 것을 건다. 


이혼하고 나서 이 둘의 인생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혼한지 5년쯤 지났을 무렵 나카하라는 전 부인인 사요코의 살해 소식을 접하게 된다. 나카하라는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대응하다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사요코를 살해한 사람은 68세의 무직인 사쿠조라는 남자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어 보였다. 


사쿠조라는 남자를 변호하고 돈을 대주는 남자는 사위인 후미야... 후미야는 대학병원 의사로 잘 나가는 남자지만  보잘것없는 여자 하나에 와 결혼했다. 대체 이들 관계의 이면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죽인 범죄자를 최고의 극형으로 처하는 것이 사형이다. 사요코는 딸을 잃은 후 사형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잡지사 등에 글을 기고했다. 그녀는 취재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가진 신념이 아주 조금은 잘못되었소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을까? 


원래 교도소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가두 어두어서 교화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실제 교도소에 갔다 온 사람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일본 역시 수감자가 출소한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갈 확률이 50%에 가깝다. 통계에 따르면 출소한 범죄자의 70%는 직장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 교도소 무용론이 제기되어야 되는 것일까?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 P 213


"성실하게 사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죠." 


최근 영관급 장교로 제대해서 국방 관련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동생을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을 괴롭히고 껄렁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창 시절 때부터 집중적으로 교화하다가 안된다면 영원히 사회와 격리를 시켜야 사회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어떻게 보면 살인을 당한 유족의 피해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사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겠지만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한 통과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회가 이런 극악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관리를 할 필요성이 있다. 


가령 한국사회는 사기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사기로 인해 피해자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고 그 자식이나 부모가 경제적으로 쪼달리다가 극악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중력파처럼 모든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 작은 사기, 범죄 하나가 파동을 이루다가 어느 순간에 다른 사람의 사기와 범죄를 만나면서 극악한 범죄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우러러보는 사회는 적지 않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사기를 치는 사람보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을 더 비난하는 사회는 확실히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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