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 숨겨진 명소 저산서원에 머물다.
뜻이 크면서도 정직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무지하면서 성실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모른다. 무능하면서 신의가 없다면 상대할 필요가 없다. 공자 역시 그런 사람들을 알 바가 아니라며 상종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원에 모셔졌던 사람들은 모두 유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삶을 살았다. 고려시대에 삼은과 같이 잘 알려진 유학자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행적을 따라가 볼 만한 유학자들도 있다.
이곳 창원지역은 낙동강이 흘러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쨍한 날은 아니었지만 내리는 비가 멈춰서 다행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가면 비가 그렇게 쏟아지다가 필자가 돌아다닐 때면 비가 그쳐준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확률적으로 그럴 때가 많다.
낙동강이 이렇게 넓은 강이었나. 저 끝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옛날에는 이곳에도 나루터가 있었을 것이다. 이날은 창원의 저산 서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저산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창원 유등리 김관 신도비가 세워져 있었다. 김 씨중 현파(판도판서공파)의 1세 조인 김관은 고려대에 판도판서를 역임하고 유학을 진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 뼈대를 세운 것이 바로 유학이다. 공자는 배우려는 열의가 없으면 이끌어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저산서원으로 들어가 본다. 지금 한참 멜론을 수확 중이어서 그런지 옆에는 멜론을 수확해서 차에 옮겨 싣기를 한참 하고 있었다. 저산 서원은 앞에 보이는 외삼문을 비롯하여 강당, 내삼문, 사우가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학후묘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강당은 홍인당, 동재는 소원당, 서재는 돈서헌으로 명명되어 있다.
외삼문에 들어서면 저산서원이 보인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서원이지만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서원이다. 저산서원에서는 앞서 본 신도비의 김관을 주향으로 하여 명회재 김문숙, 판곤 둔웅 김항, 현감 퇴평 김서 등을 배향하고 있다고 한다.
모셔진 인물들은 대부분 고려말의 인물들이다. 충선왕, 공민왕대에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다. 고려의 형세가 기울어지자 낙향하여 살았다. 당시의 관점으로 보자면 새로운 학문에 눈을 떴던 사람들이다. 기술은 항상 발전을 하며 새로운 기술과 생각은 언제든지 나오지만 그 깊이를 살펴보면 새로운 것은 없다. 결국 생각은 미래를 향해있으며 기술이 나중에 뒷받침해주는 것뿐이다.
옛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에 다시 돌아볼 일이다.
저산서원은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넓은 논과들이 펼쳐져 있어서 탁 트인 마음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읽고 찾고 생각하는 것은 항상 하기가 어렵지만 하다 보면 일상이 된다.
"시를 통해 순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예의를 통해 도리에 맞게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음악을 통해 인격을 완성한다." -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