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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4. 2022

토지 (土地)

평사리를 거닐었던 서희처럼 걸어보다. 

흙으로 되어 있는 땅을 천천히 걷는 평온한 일상이 시작이 되었다. 하나의 소설이 생명력을 얻으면 그 속의 캐릭터들도 살아난다. 박경리 소설의 토지는 26년간에 걸쳐서 쓰인 작품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평사리의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최참판댁의 비밀로 시작해서 서희라는 여성과 길상이라는 남성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악양면 평사리의 공간은 지금도 살아있었다. 

전국을 다녀보면 드라마 세트장이 오랜 시간 잘 운영되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토지 위에 세워진 집은 사람이 살던가 관리가 되지 않으면 서서히 사람의 생기가 사라져 간다. 이곳은 드라마 세트장으로도 사용이 되었던 곳이지만 매일매일이 관리가 되어서 지금도 토지 속의 인물들이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이제 평사리의 대봉감이 익어갈 때여서 마을의 곳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서 떨어진 대봉감들이 눈에 뜨였다. 인간 삶에서 현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박경리는 인간 삶의 근원적인 면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서희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최참판에서 참판이라는 벼슬은 정 2품 판서를 보좌하는 차관격이었으며, 각 조에 1명씩 모두 6명을 두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위 공무원인 셈이다.  

아파트라는 삶의 공간이 익숙해진 우리네 삶에서 토지는 예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최 씨 일가의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이루어놓은 사회적 공간에 따라 당대 사회의 변모가 드러나는데 서희는 조준구와 원한관계로 그려졌다.  

서희는 일상적인 농촌의 풍경을 보면서 살아갔을 것이다. 지금은 한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한은 인물들이 간직한 인간탐구의 본질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사람은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본원적 진실에 닿기는 요원하다.  

노란색의 꽃이 낮은 담을 중심으로 위에 덮여 있다. 옛날 풍경에는 이런 정감이 있어서 좋다. 담벼락을 돌아서면 누군가가 나올 것 같은 기대감에 서희는 걷지 않았을까. 

하동의 북천면이라는 곳에도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는 계절이 왔다. 이곳에도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만 제곱미터의 드넓은 들판을 수놓을 국내 최대 규모의 가을꽃 잔치 ‘하동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를 만나봐도 좋지만 이날은 토지 속의 세상으로 빠져들어가 본다.  

지붕을 타고 올라간 덩굴식물도 있고 오래전에 사용했던 농기구들도 있다. 이곳의 집들에는 모두 누군가의 집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다. 

이곳까지 왔으니 최참판댁으로 가보지 않을 수는 없을 듯하다. 상상 속의 토지 세계는 이렇게 현실화되었다. 하동군의 공무원이 1997년 IMF 때 최참판댁 건립을 제안하였고 경남도의 예산과 군비 등을 모아서 1998년에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이 현실 세계로 나오게 된 것이다.  

잘 보존되고 활용되고 있는 곳이라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이 되었다. 장면을 잘 기억할 수 있는 곳이라면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최참판댁의 건물은 모두 한옥이다.  근래에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있는 한옥이다. 2021년에는 하동군 최참판댁 한옥문화관이 국토교통부 주최 ‘제11회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준공 부문 ‘올해의 한옥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동 한옥문화관(준공부문 대상)’은 현대 한옥과 전통 한옥이 결합된 숙박시설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 내부 공간 및 구조 등을 독창적으로 잘 풀어냈다고 한다. 이곳에 서서 내려다보니 악양면이 주변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최참판댁 한옥문화관은 지난해 문화관광체육부 주관 전국의 지역관광개발사업 우수사례, 한국관광공사 주관 한국관광 품질인증 업소로 선정된 바 있다. 

전통한옥 브랜드화 사업은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 발전할 수 있는 전통한옥을 한국 고유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체험숙박시설로 육성하고자 지원하는 사업이다. 최참판댁 한옥문화관(올모스트 홈스테이 하동점)은 앞으로 서희와 길상의 푸른 두 소나무 이야기로 엮은 웰니스 워케이션 한옥호텔 청송재(靑松齋)’를 응모해 최종 선정되어 더 확장될 예정이다.  

이곳은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옥을 만들어두었다. 일반적인 한옥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완전히 현대적인 느낌도 아니다. 지어질 한옥호텔 외에도 433㎡ 규모의 기존 토지 세트장 12동을 리모델링해 숙박 이용객과 일반 여행객, 지역 주민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사무실과 리테일숍, 아트 갤러리 등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한다.  


서희와 길상의 푸른 두 소나무 같은 이름의 청송재(靑松齋)처럼 유난히 푸르렀던 이곳에서의 시간은 힐링처럼 느껴졌다. 토지라는 땅을 딛고 서 있는 한옥은 자연과 닮아 있는 건물이다. 토지 속의 서희는 어떤 삶을 꿈꾸었을 여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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