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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7. 2022

바위 앞의 푸르름

천연기념물 제491로 지정된 하동 축지리 문암송 

오래된 문암이라는 바위 위의 시간을 알 수 없는 소나무 한그루가 가을색에 젖어서 푸르러지고 아침의 고요한 바람만이 그 푸르름을 알 수 있었다. 마을의 곳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와 모습을 간직한 곳이 바로 하동의 악양이라는 지역의 매력이었다. 오랜 세월 그 모습을 유지할 것 같은 바위도 언젠가는 백사장의 모래처럼 변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하동의 문암송이라는 나무는 2008년에 천연기념물 제491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나무다. 문암이라는 바위의 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다. 거대한 고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힘을 충분히 간직하고 있는 나무다. 

문암송의 아래쪽에는 문암정이라는 정자가 만들어져 있다. 축지리 문암송은 크고 편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자 있는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이한 생육환경과 아름다운 수형은 식물학적, 경관적으로 가치가 크다고 한다. 직접 가봐야 이 느낌을 알 수 있다. 묘한 느낌의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공간이다.  

옛날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아 시회(詩會)를 열어 칭송하였던 것으로 전하고 지역민을 중심으로 문암송계가 조직되어 보호되어 온 나무로 문화적 가치도 크다고 한다. 

문암송을 가까이에 가서 바라보니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글들이 보인다. 나무의 높이는 약 12미터, 둘레가 3미터 정도이며 사방으로 퍼진 가지의 너비는 동서로 16.8미터, 남북으로 12.5미터가량 된다. 나무의 나이는 정확하게 추정하기가 어렵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최소 600년 이전) 전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 어울리는 먹거리를 가지고 온다면 운치가 더 좋을 것만 같다. 하동의 악양면을 내려다보면서 사람을 안아줄 것 같은 문암송 옆에 서본다. 가을바람 속에 실려 온 은은한 솔잎향은 어느새 바쁜 도심의 일상을 잊어버리게 하고 온몸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듯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기이한 형태를 한 문암송을 보는 순간, 오랜 세월만큼이나 버텨온 그 기세는 너럭바위에 살포시 자리 잡은 작은 소나무가 길고 긴 세월 풍파를 이기고 바위를 쪼개고 나오면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한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지리산과 평사리 들판이 평온해 보인다. 날이 이렇게 흐리건만 이런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왜일까. 사람일이라는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 되는 것만은 아니다. 

다시 내려와서 문암송과 옆에 서 있는 나무를 쳐다본다. 떠 있는 해가 문암송의 모습을 마치 사람처럼 보이게도 한다. 문암송에 성별이 부여가 된다면 여성일 것만 같다.  

하동 악양면의 대봉감도 푸르다. 바위 앞에 푸르름을 오랜 시간 간직하고 있는 문암송처럼 계속 마음만큼은 푸르렀으면 좋겠다. 이제 푸른 시간이 가고 노을의 시간이 왔다. 가을에도 푸르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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